<군함도> <택시운전사> 오버랩되는 실화 영화는
유대인 학살 다룬 <피아니스트>·광주항쟁 담은 <화려한 휴가>
재구성한 시간과 공간 속 '이념 뛰어넘은 가치' 되돌아보게 해

실제 있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최근 극장가로 관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비극을 소재로 삼은 <택시운전사>와 <군함도>. 멀지 않은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해 극화한 두 영화는 현재를 과거로 끌어들여 많은 공감을 이끌고 있다. 사실과 허구를 뒤섞으며 일부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아쉬운 설정도 있다. 그럼에도 가려지지 않은 진실은 분명 존재한다. 영화를 통해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일깨운 긍정적 기여는 무시할 수 없다. <택시운전사>와 <군함도>를 통해 비슷한 시대 상황 속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외 영화를 돌아봤다. 역사는 기록한 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반복되어선 안 될 가슴 아픈 근현대사를 이번 계기로 다시 한 번 돌아보자.

◇19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이야기하다

37년 전 1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는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계엄군은 광주 전역을 장악했고 시민들은 "전두환은 물러가라" "계엄군은 해체하라" 훌라송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수많은 시민이 계엄군 폭행과 발포에 스러져 갔다.

<택시운전사>는 지극히 평범한 택시운전사 만복이 독일기자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하면서 '시대의 비극'에 점차 녹아드는 설정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

만복은 데모하는 학생들을 보며 "공부하라고 대학 보내놨더니 데모만 하고"라고 말할 정도로 민주화 항쟁과 거리가 먼 시민이었다. 철저한 외부 시각으로 광주 참상을 마주한 만복이 광주시민과 함께하면서 겪는 심경의 변화에 관객도 어느 순간 동화된다.

영화는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라 불리는 독일 기자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당시 목격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광주에서 벌어진 계엄군 학살과 시민항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그 시절 광주를 담담하게 그린 <택시운전사>는 20일 올해 첫 1000만 관객 기록을 세웠다.

<택시운전사> 스틸컷.

10년 전 광주의 비극을 기록한 또 다른 영화가 있다. 2007년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는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다룬 점에서 <택시운전사>와 궤를 같이한다. <화려한 휴가>는 열흘간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맞서는 광주 시민들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했다. 누군가의 아빠이고 남편이고 학생인 평범한 시민들이 왜 총을 들고 계엄군에 맞서 싸우게 됐는지를 내부 시선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휴가> 주인공인 강민우 또한 택시운전사라는 점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와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

도청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던 시민군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잊지 말아 달라'는 절규보다 더 절절하게 와 닿는다. 영화 속 대사 "총알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사람"과 가두 방송을 하며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화려한 휴가〉 스틸컷.

◇시대를 함께하는 민족의 아픔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 징용해 착취가 자행된 '지옥섬' 군함도. 해저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에 내몰려야만 했던, 말로 다 표현 못 할 참혹함이 서린 곳이다.

영화 <군함도>는 이런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상상을 가미했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허구를 섞은 것. 와중에 일본인들 폭압에 같은 민족끼리 싸워야만 하는 비극적 장면도 함께 담았다.

〈군함도〉스틸컷.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 <군함도>는 개봉과 함께 스크린 독과점 논란과 역사왜곡 잡음까지 더해지면서 흥행세가 한풀 꺾인 추세다. 실제를 바탕으로 한 만큼 비현실적인 설정에 뒷맛이 개운치 않은 점도 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개방식이라 할지라도, 일본 만행과 강제 징용 아픔은 분노를 자아낸다.

군함도의 실제 이름은 하시마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조선인 강제 동원 사실은 철저히 지워진 채.

국외에도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들이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영화 중에서 <피아니스트>는 단연 돋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실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그린 〈피아니스트〉

독일인에 쫓겨 생사를 넘나드는 참담한 유대인들 일상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을 고초가 겹쳐진다.

<피아니스트> 관전 포인트를 하나 더하자면, 영화 속 독일 장교로 등장한 배우 토마스 크레치만이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로 분했다는 점이다. <피아니스트>에서 폐허 속에서 숨어 지낸 유대인을 발견하고도 마지막 인간애를 보여준 토마스 크레치만이 <택시운전사>에서는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으로 목숨을 걸고 광주의 참상을 알린 모습을 연기하며 전쟁 속에도 이념을 뛰어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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