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대표, 사고 원인 의혹 제기·관리감독 소홀 지적
"원·하청 사후 대처 문제 많아"…회사측 "책임 통감"

"환기구 원통에 구멍이 나있고, 접지선도 거미줄처럼 보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번 일은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다."

21일 오전 사고 현장을 둘러본 유족들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이날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 잔유 보관 탱크(RO 탱크) 폭발 사고로 숨진 노동자 4명의 유족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창원해경·고용노동청 등의 합동감식이 진행되던 사고 현장을 찾았다. 이미 사고 현장이 정리된 부분도 있었지만, 사고 원인의 실마리라도 찾고자 유족 대표들이 현장을 파악했다. 유족 대표는 조선소 근무 경험이 있는 사망자 가족에서 1명씩 대표를 뽑았다. 유족 대표가 현장을 다녀온 후 오후에 빈소가 차려진 진해연세병원 장례식장에서 STX조선해양, 하청업체 관계자 등 10여 명과 유족 10여 명이 한자리에 앉아서 1시간 넘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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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사고로 숨진 노동자 4명의 유족 대표단이 21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창원시 진해구 병원 장례식장에서 STX조선해양, 하청업체 관계자 등과 회의를 열었다. /우귀화 기자

이 자리에서 유족들은 원청과 하청업체 모두 사후 대처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유족 측은 "유족 중 회사로부터 이런 사고가 났다는 통보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언론을 통해서 사고를 알게 돼 병원으로 왔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유족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7시간 동안 시신도 못보고, 울면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말했다.

이들은 20일 저녁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병원에 오고서야 빈소가 차려지고, 회사 측에서 유족을 찾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왜, 위험한 일은 원청이 하지 않고 다 하청을 주느냐. 하청 노동자가 없었으면 과연 그 배가 뜨느냐"며 묻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STX조선해양과 하청업체 측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특히 조선소 근무 경험이 있는 유족들은 사고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숨진 노동자 대부분 10년 이상 도장 작업을 전문적으로 한 인력으로 알려졌다. 숨진 박 모(33) 씨의 형은 "가스 빼내는 호스 한번 봤나. 필터나 접지선이 너불너불하더라. 어떻게 그런 것을 다 보고 작업 승인을 해주느냐. STX조선에서 작업 도장 찍어주며 작업시킨 것 아니냐. 원청이 원천적으로 잘못했다"며 "장비가 생명인데, 장비관리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장비 관리 기록대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밀폐된 공간에서 배기에 문제가 있었기에 가스 배출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폭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유족 신모(55) 씨는 "처남이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나는 다른 조선소에서 근무한다. 폭발한 탱크 접지선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통 접지하는 곳이 전기 박스 등에 따로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이 철판 아무 데나 접지가 돼 있더라. 그러면 전기가 흐르고 스파크가 생겨서 사고가 날 수 있다"며 접지 문제를 지적했다.

유족 측이 사고 당시 함께 일한 사람이 와서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사고 당일 작업팀장이 설명했다. 작업팀장은 "사고 당일 10시 20분쯤 도장 스프레이 작업을 시작했다. 10시 50분께까지 사고 지점에 있었다. 화기 작업은 없었다. 이후 다른 곳을 둘러보던 중 RO탱크가 폭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고 지점을 떠난 시간부터 사고 시점까지 화기 작업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시인했다. 당시 안전관리팀(HSE) 직원도 사고 선박에서 내려와서 야드 순찰을 하고 있었다.

이어 그는 "스프레이를 뿌리면 유증기가 생긴다. 경험상 전선 피복이 벗겨진 상태에서 스파크가 생겨서 폭발한 게 아닌가 하고 경찰에서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관리 감독 소홀이다. 그렇게 관리해서 작업한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진실을 규명해 줄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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