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렬 전 고성군수 '동물학대농장'대대적 개혁 주문
"소형 다수 농장 되면 공급량 안정"… 내년 시범 운영

'살충제 검출 계란 파동'은 축산시스템 근본 변화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대규모 공장식 아닌, 이른바 '동물복지농장'으로의 전환이다. 가축 본래 습성에 맞춰 자유롭게 키우면 윤리적 책임도 높이고 건강한 먹을거리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들어 동물복지농장 개념이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런데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이를 적극적으로 설파한 이가 있다. '친환경농업 전도사'로 알려진 이학렬(65) 전 고성군수다.

이 전 군수는 21일 통화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국내 축사시스템은 '동물학대농장'이다. 닭 한 마리가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 갇혀 있고, 돼지 3~4마리가 한 평 공간에 뒤엉켜 있다. 이러한 밀폐형 축사에서는 약품을 안 쓸 수가 없다. 미국 어느 학자가 말했다. '농축산 항생제 기준치는 모두 농약 제조회사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기준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 계란 한 개에서는 소량이지만, 그걸 여러 개 먹으면 결국 기준치를 넘는 것 아닌가."

이 전 군수는 근본 대책을 개방형 축사와 같은 동물복지농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의지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학렬 전 고성군수. /경남도민일보 DB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나설 문제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혹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대대적인 축사시설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살충제·AI·구제역 파동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가격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대규모 생산이 어려워지면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을 예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전 군수는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현재는 축사 허가를 얻기가 너무 어렵다. 혐오시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복지농장 개념에서는 친환경적 설계로 악취를 없앨 수 있다. 분뇨는 미생물 활용으로 자연 발효 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마을 곳곳에 소규모 농장이 들어설 수 있다. 즉, 지금의 대형 소수 농장이 소형 다수 농장으로 바뀌게 될 뿐 공급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지금은 사료를 국외에서 90% 이상 수입하는데, 이것을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면 생산비 또한 더 늘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혼란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전 군수는 고성군정을 이끌던 지난 2008년 관련 기관과 협약을 맺고 '무항생제 가축사육' '고품질 기능성 축산물 생산'을 추진했다. 나아가 2012년까지 군내에서 제초제·화학비료·항생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농·축산물 생산을 목표로 삼았다. 오늘날 화두를 한 발짝 앞서 시도한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고정관념에서 못 벗어났다. 농사에서는 농약을 당연히 사용해야 하고, 축사에서는 냄새나는 게 당연하다는 기존 생각들이다. 당시 정부에서도 관심이 전혀 없었다. 앞으로 동물복지농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기존 농장 저항이다. 지금 돈 잘 벌고 있는데, 닭 5000마리 키우던 것을 500마리로 줄여야 하고, 축사시설 또한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는데,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정부가 나서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공장형 축사를 점진적으로 없애고, 마릿수를 줄이고, 개방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공장형 축사에 지원하는 돈을 고스란히 동물복지농장으로 돌리면 된다."

이 전 군수는 직접 농장 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내년 초 돼지 100마리, 닭 300마리로 친환경 동물복지농장을 시작,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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