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한 마리 물무늬 위로 펄럭이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안겨버린 곳

거제 이수도

새의 어깻죽지에 도선이 닿는다. 거제 대금산에서 보면 학이 북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어서 학섬이라 불렸다는 섬.

멸치잡이 권현망이 들어와 마을이 부유해졌고, 바닷물이 이롭다 하여 지금은 이수도라 불리는 섬이다.

'이로운 물의 섬'은 거제시 장목면 시방리에 속한다. 이수도와 뭍을 잇는 도선은 시방마을에서 출항한다.

시방과 이수도는 항로로 이어지나, 지명으로도 궤를 함께한다.

시방마을은 마을 포구와 해변이 활처럼 흰 모양이다. 남동쪽 등마루에서 이수도를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이라 시방이다.

시방이라 불릴 때 이수도는 학섬이었으니, 도선의 경로는 활시위를 떠나 날아가는 학을 쫓는 모양새다.

 어선을 대 하역하는 물양장 주변은 섬사람과 뭍사람, 외국인 노동자가 한 데 섞이는 유일한 공간이다.

학의 머리를 닮은 반도가 뭍을 향해 툭 튀어나왔다. 새의 목덜미 즈음인 반도의 끝자락을 중심으로는 마을이 섰다.

123.jpg
▲ 섬을 끼고 바다를 보았을 때 펼쳐지는 풍경. /최환석 기자

선착장에서 시계방향으로 섬을 훑어본다. 돌 틈에 핀 술패랭이꽃과 참나리가 뭍사람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반긴다.

날씨가 흐린 탓에 시야 또한 뿌옇다. 멀리 구름 아래 거인의 두 다리처럼 거가대교가 보인다.

300m가량 해안을 따라 걷다, 섬 가운데로 방향을 꺾어 호젓한 숲길로 들어간다. 오르막길의 시작이다.

섬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본다.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울 정도다.

비탈 한 면을 가득 채운 고사리는 이곳 민박집에서 나물 반찬으로 만날 수 있다. 채취는 금지.

달개비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닭의장풀은 약용과 식용으로 모두 쓰인다. 엉겅퀴도 달개비 못지않게 활용도가 높다.

123.jpg
▲ 이수도 선착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섬 지도와 해설문. / 최환석 기자

꽃꽂이 소재로 곧잘 쓰이는 부들은 습지에서 자생하는데, 이수도 야생에서 만나니 새롭다.

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사슴이다.

해발이 가장 높은 곳에 사슴농장이 있어서겠다. 섬 군데군데 사슴 조형물이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지난 2013년 농장을 탈출한 사슴이 주민 골칫거리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사슴을 본뜬 조형물이 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다.

섬에는 전망대가 세 곳 있다. 해안·해돋이·이물섬 전망대다. '멀리 내다보도록 높이 만든 대'이기에 남해 전체를 조망하는 장치로서는 그만이다.

하지만, 아쉬운 풍경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데는 꼭 이수도 전망대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으냐는 생각이 스친다.

멋쩍게 돌아서는데, 눈이 확 트인다. 전망대를 벗어나니 오히려 절경이 쏟아진다.

기이한 모양의 바위와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꼭 화폭의 그림과 같다. 아니, 그림도 채 담지 못할 모습이다.

123.jpg
▲ 이수도 선착장은 뭍과 섬을 오가는 이들로 가득하다. / 최환석 기자

물론 정해진 자리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방법도 선택지에 들어간다.

다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훌륭한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점이 여행의 숨은 매력이지 않을까.

이물섬 전망대에 닿아 숨을 고른다. 전망대 옆엔 이수마을 공동묘지가 놓여있다.

섬에서 나고 자라, 다시 섬 품에 안긴 이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이승과 저승의 시간 모두 바다와 이어지는 삶이리라. 뭍사람의 편견으로 감히 짐작해본다.

543901_414967_5609.jpg
▲ 숨은 이수도 절경. / 최환석 기자

'남해여/나의 이승과 저승을 모두 메워 버린/푸르디 푸른 네 살결(이중도 시 '새끼 섬' 한 대목)'

숲길을 벗어나 다시 마을. 물양장 앞 학교 건물이 있다.

원래는 이수도 분교인데, 2004년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금은 '이수도 어촌체험마을' 공간으로 쓰인다.

마을 주민은 민박을 친다. 뭍에는 '1박 3식'으로 알려졌다. 해산물이며, 반찬이며 한 상 가득한 음식의 재료는 대부분 이곳이 산지다.

섬사람은 오로지 어업을 생계로 살아간다는 생각은 편견이겠다. 명물로 떠오른 수상 콘도와 민박집을 보면서 섬 또한 변화에 분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날 걸은 거리 2.4㎞. 5176보.

거제 지심도

외롭지 않은 섬. 지심도 선착장에서 받은 인상이다.

12월부터 피어 4월 하순께 꽃이 뚝 하고 통째 떨어진다는 동백나무가 빽빽하다.

거제 일운면 지세포리에 속하는 지심도는 동백으로 유명하나, 전부는 아니다.

소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등 40여 종에 가까운 식물이 한 데 사는 섬이니 외로울 리가 없다.

선착장에서 '동백섬 지심도 거제시 반환' 문구가 쓰인 펼침막이 반긴다. 청동 인어상과 지심도 반환 기념비도 보인다.

123.jpg
▲ 거제 지심도는 나무 그늘이 많아 여름 산책길로 훌륭한 선택지다. / 최환석 기자

지심도는 1936년 일본 병참 기지로 쓰이기 시작해 국방부 소유로 넘어갔다가 81년 만에 거제시에 반환됐다.

잠자코 섰는데 수레 달린 오토바이 여러 대가 순식간에 선착장을 점령한다.

민박 손님 짐을 실어 나르려는 섬 주민들이다. 선착장 이외에는 대부분 경사가 급한 길이라 민박 손님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바다를 등진 기점에서 왼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길의 반환점에는 해안선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7월 지심도는 붉은 동백 꽃잎이 흐드러지게 깔린 길은 아니지만, 그늘이 있어 산책에 적당하다.

파도 소리와 나무 그늘을 벗 삼아 걸으며 뭍에서 따라온 고민거리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545088_415813_4443.jpg
▲ 해맞이 전망대에서 원형 포진지로 향하는 숲길. / 최환석 기자

잠시 탁 트인 공간이 나오고, 일본식 단층 목조 건물이 등장한다. 지심도 전등소가 있던 자리다.

지심도 전등소는 포대 완공과 더불어 1983년 1월 27일 세워졌다. 전등소는 발전소와 소장 사택, 막사 등 부속 건물로 이뤄졌다.

전등소는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했다. 밤에 적 함선을 탐지하려고 탐조등도 갖췄는데, 지름 2m에 도달거리가 7~9㎞가량이었다고.

전등소 소장 사택을 지나자 촘촘한 대나무 숲이 있고, 조금 더 걸으니 일본군 서치라이트 보관소가 나온다.

조금 떨어진 곳 바닥에는 서치라이트와 함께 쓰였던 30㎝ 높이 방향 지시석이 박혀있다. 지심도 주변 지역을 표시한 돌이다.

6개 중 남은 5개는 각각 장승포, 가덕도 등대, 절영도, 일본 대마도 남단을 가리킨다.

해안가 해안침식절벽을 따라 해안선 전망대로 가는 길. 국기 게양대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

지심도 포대가 세워지고, 일본군은 포대 진지임을 알리고자 이 자리에 교쿠지쯔키를 달았다.

일장기 태양 문양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햇살을 붉은색으로 도안한 깃발, 욱일기다.

2015년 8월 15일 지심도 주민들은 이곳에 태극기를 걸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태극기가 지심도의 아픈 흔적을 지워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123.jpg
▲ 일본군 원형 포진지. / 최환석 기자

해안선 전망대에서 숨을 고르고 발길을 돌려 해맞이 전망대로 향한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서 바다 냄새를 한껏 머금은 바람을 맞는다. 나무 그늘에서 호사롭게 걷는 기분과는 다른 해방감.

숲에서 섬휘파람새 경계음이 들린다. 지나가는 객임을 알리는 휘파람으로 몇 번 대응을 하자 경계를 풀고 노래를 부른다.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 휘파람새는 사육이 많았다고 한다. 그릇된 인간의 욕망이 분출된 까닭이다.

자연은 원래 그 자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의미가 있다. 반환된 지심도를 놓고 개발과 보존의 논쟁이 오가는 때, 후자에 마음이 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원형의 포진지를 둘러보고 다시 선착장.

한낮에도 컴컴하게 그늘진 동백숲에서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다. 선착장처럼 트인 공간에서 비로소 해가 지고 있음을 인지한다.

그늘 덕에 편히 걸을 수 있었지만 여름 날씨 앞에 장사 없다. 온몸을 적신 땀을 식힐 방법을 찾다가 '에라 모르겠다' 바다로 뛰어든다.

123.jpg
▲ 국기 게양대. / 최환석 기자

시원한 바닷물에 안겨 생각한다.

하늘에서 보면 한자 '마음 심(心)'을 닮아 지심도라지만, 숲이 우거졌다고 '수풀 삼(森)'을 쓴 지삼도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고. 동백섬이란 이름도 좋고.

이날 걸은 거리 1.8㎞. 5686보.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