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응·대리운전비 받은 건 비위 아닌가
도덕성 저버린 정치인 추태 주민 '싸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를 일컫는 말이다. 옛날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이 보여줬던 투철한 도덕의식과 모든 일에 앞장서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용어지만, 현대에 와서는 고위직일수록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최근 거제에서는 조폭 출신 장모 씨가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권민호 시장의 사과와 함께 시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해 지역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려는 권 시장으로부터 정적을 제거해 달라는 사주를 받고 상대 인사들에게 뒷돈을 줬으나 권 시장이 자신을 이용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 씨는 제거 대상으로 거론된 3명을 만나 대화한 녹음파일까지 공개했다.

폭로 내용 진위를 떠나 거명된 인물들이 현직 시장에다 변광용 민주당 거제당협위원장, 한기수 거제시의회 부의장, 차기 시장선거 출마가 유력한 김해연 전 도의원 등이다 보니 폭발력이 엄청나다. 당사자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무고와 명예훼손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으며,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경남경찰청이 직접 수사에 들어가 조만간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이들이 받을 정치적인 타격은 엄청나다. 먼저 권 시장은 만일 장 씨 주장처럼 정적제거를 사주한 것이 맞았다면 형사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사주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민주당 입당을 통한 도지사 선거 출마 또한 힘들 수 있다.

정적으로 거론된 3명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한 부의장과 김 전 도의원에게 1000만 원씩 줬다는 장 씨 주장의 진위나, 김 전 도의원과 변 위원장이 100만 원씩 받았다는 정황은 녹음파일에서 드러났지만 이후 돌려줬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못하면 이들의 정치생명은 끝일 수밖에 없다. 1000만 원은 받은 적이 없고, 100만 원도 돌려줬다 해도 향응과 대리운전비 등은 남아 정치적 재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한 부의장은 장 씨의 명품 안경을 빼앗은 사실까지 드러난다.

소속 정당 대응도 문제다. 민주당은 '당내 인사의 중대한 비위 사실이 확인되는 즉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지만 중대한 비위사실이 어디까지인지 애매하다. 향응이나 대리운전비 10만 원은 아무 문제도 없는 걸까? 노동당은 '소속 의원은 진실이 명백히 밝혀져서 시민들의 충분한 이해가 없는 한 이번 시의원 임기를 끝으로 모든 정치활동으로부터 떠날 것'이라며 공당의 책무를 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인식 태도가 안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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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두고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조선경기 위축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정치인들의 추태를 용인할 만한 너그러움은 없다. 장 씨 녹음파일에는 차마 글로 옮기기에 부적절한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녹음과정이 이중성을 띠지만, 최소한 그들의 대화에선 공인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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