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환 감독〈해원〉시사회 전국 민간인 학살 사건 조명…공권력 폭력·유가족 '한'담아

어머니는 말하지 못했다. 딸에게 왜 아버지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는지. 딸은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를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 유복자인 아들은 원래 아버지란 존재가 없는 줄만 알았다. 어른들은 마치 말해선 안 될 금기어를 입에 담은 듯 무겁게 침묵했다.

구자환 감독이 민간인 학살을 다시 꺼내 들었다. 12일 오후 7시 도교육청 공감홀에서 유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가 열렸다.

지난 2015년 영화 <레드 툼> 개봉 이후 2년 만에 만나는 작품이다. <레드 툼>은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10여 개 국내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역사의 상흔을 담담히 알렸다.

영화 <해원> 역시 질곡의 현대사 속에 깊숙이 감춰진 민간인 학살을 담았다. '해원'은 원통한 마음을 풀어준다는 뜻이다. 전작이 한국전쟁 직후 국민보도연맹 학살이 자행된 경남지역을 다뤘다면 이번 영화는 전국 곳곳을 비춘다.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 〈해원〉의 한 장면.

국군과 경찰, 인민군과 미군 등에 의한 학살 등 사건 유형도 넓혔다. 시기 또한 해방 이후 이념대립으로 뒤덮인 1945년부터 한국전쟁기까지 확장됐다.

영화는 전국 곳곳에서 자행된 비극의 현장을 찾는다.

잔혹했던 상황은 살아남은 자의 기억을 통해 증언되고 있다.

당시 마을 주민과 유족은 60여 년간 묻어두었던 진실의 조각을 어렵게 꺼낸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엄마와 형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동생, 자신을 감싼 누이 덕에 목숨을 건진 자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건을 입에 올리면 '빨갱이'로 몰릴까 자식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평생 숨죽여 살아왔던 세월이 한으로 남았다.

뜨거운 눈물을 삼킨 채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그들이 관객들에게 묻는다. 이 땅에 태어난 게 죄냐고. 또 국가에 묻는다. 공권력을 앞세워 무자비한 학살을 저지를 수 있는지.

90여 분 상영이 끝나고 객석 곳곳엔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30대 아들과 함께 온 70대 유족은 "창원에서 시사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구에서 왔다"며 "친척들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며칠 전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비로소 죽음의 이유를 알게 됐다"고 눈물을 지었다.

구 감독은 "숱한 학살사건 가운데 0.5%도 되지 않는 사건만을 다뤘다. 유족 분들에게 죄송하다"며 "가슴속 응어리가 영화로나마 조금 풀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남도교육청,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원과 SNS 페이스북 후원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는 내년 5~6월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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