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모두가 피해자] (1)통계로 본 학교 일상
피해자 31% "별일 아니라고 생각", 가해자 22% "장난"
학교 내 전문상담사 "가해-피해자 구분 모호할 때도"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창원 중학생 집단 폭행 등 학교폭력이 화두다. 가해 학생들의 잔혹성이 두드러지면서 처벌 강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어른들이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호되게 나무랄 수 없는 환경에서 결과만 놓고 처벌을 강조하는 게 옳은 일일까. 예방책과 가해자 징계만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기에는 한계점이 분명하다. 전문가를 통해 '일상의 학교폭력'을 들여다보고 함께 풀어가야 할 고민의 시작과 작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쟤가 먼저 째려봤어요.", "욕먹기 싫으면 자기가 조심하면 되잖아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 청소년들은 학교 성적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고 항변한다. 이런 특성이 있는 아이들이 모인 곳이 학교이고, 개인과 개인이 부딪쳐 마찰을 일으킨다. 이는 곧 학교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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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보도되는 학교폭력은 특수성과 잔혹함이 상위 1, 2%에 해당하는 경우다. 교육부가 2012년부터 매년 두 차례 진행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상담사를 통해 학교 일상을 들여다보자.

◇사소한 감정싸움도 학교폭력 = 2011년 12월,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후 2012년 초 정부는 '학교 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2012년 1차 학교폭력 피해응답률은 초교 15.2%, 중학교 13.4%, 고교 5.7%였지만 2017년 1차 조사에서는 초교 2.1%(경남 1.9%), 중학교 0.5%(경남 0.4%), 고교 0.3%(경남 0.2%)로 대폭 줄었다.

대전시교육청 학교폭력담당 김의성 변호사는 "학교 일진 등 폭력이 만연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가해자 징계조치를 강화하면서 학교 현장과 눈앞에서 보이는 심각한 학교 폭력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초교 4학년부터 고교 3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초교 4학년 피해응답률 1차는 약 4%대로 높지만, 2학기에 진행하는 2차에서는 2%대 초반으로 낮아진다. 이는 처음 설문조사에 응하는 초교 4학년 학생들의 학교폭력 인식에는 "돼지야"라는 놀림과 감정싸움도 심각한 학교폭력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김영현(경남위전문상담사협의회 회장) 전문상담사는 이러한 결과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김 전문상담사는 "학교 일상에서 접수되는 학교폭력은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이다 보니 사전에 상담이나 갈등 조정으로 해결 가능한 일이 많다"며 "이를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해 어른이 개입해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가해자 10명 중 8명은 친구 =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응답한 가해자 유형은 '같은 학교 같은 반'이 44.2%,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 31.8%로 친구가 76%다. 피해장소 역시 '교실 안' 28.9%, '복도' 14.1%, 운동장 9.6% 등 학교 안이 67.1%(경남 69.8%)다. 피해 시간은 쉬는 시간이 32.8%, 점심때 17.2%, 수업시간 8%다.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마찰 빈도가 높다.

그런데 특이점은 피해자 31%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문상담사는 "상담을 하다 보면 평소 친한 친구이자 무리에 속해 있으면서 사소한 장난을 주고받다가 마찰이 생기면 이전에 있었던 일이 학교폭력 사례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신발 주머니를 대신 들어달라던 부탁이 명령이 되고, 친구관계에서도 상하관계가 형성되는 사이 쌍방이 무감각해진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은 후에는 그러한 과정들이 지속적인 괴롭힘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신발 주머니를 대신 들어주던 일이 별일이 아니라고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해자 또한 "상대방이 나를 먼저 괴롭혀서" 27%, "장난으로" 22.3%라며 자신의 행위를 항변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장난과 사소한 괴롭힘이 학교폭력임을 인식해야 하지만 친구 사이이다 보니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김 전문상담사는 "상담을 하다 보면 누가 과연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오판도 있다. 자치위원회 처리 과정 중 피해자가 가해자로 재논의되기도 한다. 한 사례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 친구를 밀친 것이 사고로 이어졌고, 가해자로 몰리는 일도 있다"고 짚었다.

일부 학교폭력은 점점 잔혹해지고 있다. 폭력적 영상이나 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학교 밖 청소년이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다. 하지만, 김 전문상담사는 현재 학교에서 접수되는 학교폭력은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교우관계를 상담하고 심각한 학교폭력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 학교 내 전문상담사 역할이지만, 도내 1600여 개 학교 중 상담사를 둔 학교는 28%(초 116곳·중 200곳·고 137곳)에 지나지 않는다. 경남은 타지역보다 상담사 배치 비율이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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