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장' 집와이어 설치한 하동
섬진강 재첩 등 '하동 보석'에 집중을

이번 추석 연휴가 길어져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던 중 하동에 아시아에서 가장 긴 집와이어가 최근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향길 조금 둘러간다 생각하고 여기 머물며 잠시 놀다 가도 좋겠다 싶었다. 어떻게 이용하나 정보를 검색하다가 한 번 이용에 평일 4만 원, 휴일 4만 5000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네 명인 우리 가족이 이번 연휴에 한 번씩 타려면 18만 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내는 액수를 듣더니 "그 돈이면 워터파크에서 하루 종일 놀겠다"며 단칼에 잘랐다. 물론 하동행은 없던 일이 됐다.

혹시나 싶어 다른 지역 집와이어도 검색해봤다.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고향 가는 길에 들러서 한 번 타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생각보다 많았다. 수도권에는 자라섬과 남이섬을 잇는 집와이어가 가장 유명하고, 그 밖에도 용인 자연휴양림을 내려다보는 것 등이 있었다. 이용료는 대체로 4만~5만 원이었다. 하동 집와이어가 특별하게 비싼 건 아니었다.

만들어진 시기를 살펴보니 모두 2010년대 이후다. 몇 군데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최근에는 가속도가 붙는 느낌까지 든다. 한때 유행했던 케이블카에 비해 건설비가 많이 들지 않고 환경단체의 반발도 적은 편이라 지자체들이 선호한다는 평가가 많다. 하동 집와이어가 홍보를 위해 비교 대상으로 삼은 영천 집와이어는 지난여름에 완공하고 올여름에야 문을 열었다. 당시 영천군이 '아시아 최장'이라고 홍보했는데, 불과 한두 달 만에 하동군이 그 기록을 깨버렸다.

하동군은 이 시설을 위해 33억 원을 들였다고 한다. 시설 사업치고는 큰돈이 아니지만, 군 단위 예산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란다. 집와이어 말고도 이미 빅스윙, 파워팬, 퀵점프 등의 놀이 시설들이 들어섰다 하고 내년 말에는 금오산 정상까지 케이블카와 모노레일까지 놓일 거란다. 하동군은 금오산 일대를 '세계 최고 수준의 어드벤처 레포츠 메카'로 발전시킨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불과 한두 달 만에 '아시아 최장'이라는 타이틀을 하동에 뺏긴 영천 집와이어의 운명을 과연 하동이라고 비켜갈까? 당장 내년 여수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집와이어를 만들어댈 텐데 언제까지 최고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또 집와이어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겼을 때 자생력을 갖고 운영할 수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남을까? 청룡열차로 유명했던 어린이대공원 놀이시설이 지금은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가? 한때 북서울 어린이들의 로망이었던 드림랜드가 2008년 문을 닫고 북서울숲으로 재단장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 굳이 서울까지 갈 것도 없이 1994년 문을 열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진해 파크랜드가 불과 17년 만에 문을 닫고 지금은 조촐한 워터파크로 연명하고 있는 모습은 이번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할 때 과연 검토됐을까? 한때 전국적인 관광지였다가 결국 문을 닫은 창녕의 부곡하와이는? 물론 지금은 온통 장밋빛일 테다. 하지만, 하동의 어드벤처 레포츠단지의 수명이 과연 얼마나 지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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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은 위로 지리산을 이고 아래로 남해를 안고 또 곁으로 섬진강을 낀 천혜의 아름다운 고장이다. 문화적으로는 <토지>의 출발점인 평사리와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화개장터를 품고 있고, 음식도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섬진강 재첩과 하동 녹차를 가지고 있다. 굳이 다른 시군과 '전국 최고', '아시아 최장', '세계 최대'를 겨루지 않아도 하동이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는 보석 같은 자원들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지금의 하동 행정부가 이런 자원들을 소홀히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하동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행정력을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을 뿐. 내 걱정이 그저 노파심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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