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통영·창원·목포·울산 비정규직 설문조사
노조 활동·산재 신청 '원인'…취업 등 불이익

#1. 조선소 10년 경력 ㄱ 씨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관리자와 말다툼을 한 후 다른 하청업체에 재취업이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업체에도 이력서를 넣었지만 '에러가 안 풀린다, 당신은 안 된다'는 답만 들었다. 한 조선소 하청업체 팀장의 "조선소에서 단체행동 했네"라는 말을 듣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됐다.

#2. 18년간 조선소에서 일한 ㄴ 씨는 2004년 4월 하청노조에 가입하고, 한 번의 투쟁으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일하던 하청업체는 폐업했고, 다른 지역에서 물량팀으로 일했다. 2016년 다시 원래 일한 지역으로 돌아와 이력서를 냈지만, 여전히 '노조 에러'가 뜬다며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조선업종 비정규직 블랙리스트 실태조사연구팀은 최근 '2017년 조선업종 비정규직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연구보고'를 발표했다. ㄱ·ㄴ 씨 사례처럼 조선업종 블랙리스트는 실제 존재하며, 지속적으로 관리되는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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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44% "블랙리스트 존재" = 금속노조 조선조직화 대책회의,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저지시민사회대책위는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전남 목포, 거제·통영·창원, 울산지역 조선업종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5개 지역 노동자 9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16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했다.

설문조사에서 44.4%가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모른다' 45.2%, '블랙리스트는 없다' 10.4%로 집계됐다.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사회적 현상'이라고 답한 노동자가 46.1%로 높게 나왔다. '동료가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28.3%,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0.1%로 조사됐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9.3%나 됐다.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 절반가량(47.7%)이 직·간접적으로 블랙리스트를 경험한 것이다.

◇"취업에 불이익 받아" = 블랙리스트 불이익은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됐다. 블랙리스트를 경험한 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취업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노동자가 42.2%, '임금 불이익' 15.6%, '징계 및 해고' 15.6%, '작업시간(잔업 및 특근)에 대한 불이익' 13.3%, '감시 및 현장 통제'가 11.1%로 조사됐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이유에 대해서는 '회사 불합리에 항의'라는 응답이 32.5%로 가장 높았다. '노조 활동'과 '노동자 권리 주장'도 각각 20%씩 차지했다. '산재 처리 신청'도 15%였다. '평소 밉보여서'도 10%로 나타났다.

'산재처리' 신청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응답한 것처럼, 노동자들이 사고 발생 시 산재처리를 하지 않는 이유도 '해고, 폐업, 블랙리스트 두려움'이 34.9%나 차지했다. '원청의 압력으로 공상 강요'도 20.6%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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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삼성중공업 직장협의회 노동자들이 준법 투쟁을 하고 있다./경남도민일보DB

◇강력한 규제 필요 = 실태조사팀은 고용 및 직업 선택의 제약, 노동자 단결권 및 노동 3권을 제약하는 블랙리스트 근절 대안을 제시했다.

조사팀에 참여한 이은주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활동가는 "정부 관련기관과 국회가 조선업종 블랙리스트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블랙리스트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팀은 △근로기준법상 노동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감시·처벌 △노동자 직업선택의 자유 및 노동 3권을 제약하는 반헌법적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의 강력한 처벌조항 법제화 등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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