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모두가 피해자] (2) 2004년, 2012년 그리고 2017년 법
2004년 제정된 '학폭법' 2012년 엄벌 기조로 개정
징계·자치위 개회 강제, 교권 추락·신뢰회복 저해
조정·자정능력 상실 우려

지난 2004년 제정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은 18번 개정 과정을 거쳐 현재 학교폭력 관련 활용도 높은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 대구 한 중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2012년 엄벌 기조로 개정된 것이 현재까지 큰 뼈대를 이룬다.

학폭법에서 규정하는 학교폭력 개념은 광범위해지고 사소한 다툼까지도 학교 내 교육적 기능을 무시한 채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부치도록 돼 있다.

2017년 현재, 학폭법이 교권을 무너뜨리고 학교 자정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2004~2012년 = 1990년대 중반 학교 폭력으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1997년 본격적으로 학교폭력 예방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고 2004년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주도로 학폭법이 빠르게 제정됐다. 실제 법이 바로 만들어졌을 때는 의식을 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지금처럼 쉽게 언급되는 법은 아니었다.

2011년 대구 학교폭력 피해 중학생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교폭력은 전환점을 맞았다.

이듬해 2월 정부 차원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발표와 동시에 학교폭력실태 전수조사 중간결과도 나왔다. 2012년 학폭법 개정 내용은 따돌림도 학교폭력 범위에 포함하고, 학교폭력 가해자 징계 내용은 학생부에 기재(연동 개정된 교육부 훈령 제195호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하도록 하는 등 가해자 처벌 강화 위주로 개정됐다.

이는 심각한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학생-교사', '학생-학생' 신뢰 회복이라는 학교 현장의 교육적 기능마저도 줄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학폭법은 제1조(목적)에서 밝혔듯이 학생 인권을 보호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고자 제정됐다.

◇2017년 현재 = "학교가 사법기관입니까? 교육기관입니까?"

지난 8월 경남도교육청이 도내 초중고 학교관리자(교감)를 초청해 진행한 '학교폭력 솔루션 토크콘서트'에서 나온 첫 질문이다.

함안 모 학교 교장이라고 밝힌 그는 "학교에서 교육을 하라고 해야지, 절차에 따라 징계를 내리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고 참석자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학교는 학폭법과 학교폭력 사안 처리 가이드라인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연다.

학교폭력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17조 1항 가해학생 조치사항 1~9호 중 어떠한 처분이라도 결정해야 한다. 1호 서면사과, 2호 접촉 및 보복 금지, 3호 학교봉사,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 6호 출석정지, 7호 학교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 중 가장 낮은 단계인 1호 조치 이상 부과해야 한다. 낮춰서 '학교폭력 아님 처리'를 할 수 없다.

창원 한 고교 교장은 "서면 사과 징계를 내릴 정도면 교사 지도로 충분히 화해를 유도하고 개선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학교폭력이 접수되면 자치위에서 칼로 재단하듯이 가해자, 피해자를 나눠 어떠한 징계라도 내려야 마무리가 된다. 학생부에 기록한다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다. 경미한 사건 가해자는 사과하고 끝낼 수 있는 일도 끝까지 부정하며 꺼리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9호 조치 외 나머지는 졸업 2년 후 학생부에서 삭제되지만 6호 출석 정지는 '무단결석'으로 처리돼 평생 남는 기록이 된다.

이런 이유로 경미한 사건은 담임교사에게 종결권을 부여하고 심각한 사안은 외부기관에 심의 처분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발생하면 무조건 자치위를 열고 조치를 하도록 강제하면서 학교 재량권이 사라진 것이다.

초동 대응으로 막을 수 있는 갈등이 징계로 이어지고 징계에 반발한 보복, 더 심각한 2차 피해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피해자 처지에서 합당한 조치일지라도, 교육적 관점에서 학교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처벌 강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 최근 몇 학교폭력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김영현 전문상담사(경남위전문상담사협의회 회장)는 "교사들이 학생 간 문제를 인지해도 인권 침해, 직무 유기(알고도 신고하지 않음), 은폐·축소 논란 등을 우려해 개입을 자제한 채 자치위로 떠넘기는 사례도 있다. 다툼 조정이나 훈육 기회를 빼앗기는 등 교사 사명감이 낮아지는 것 역시 학폭법의 또 다른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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