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협'에 '멸공 횃불' 되려했던 소년
시대에 맞게 '안보·경제 프레임'변해야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산들산들 시원한 바람. 들판에 가득 찬 황금 물결. 어느새 수확의 계절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세월은 또다시 살랑이는 코스모스 꽃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지나갑니다. 여름 철새들은 멀리 남쪽 나라로 떠나고 이제 북에서 내려오는 겨울 철새들이 우리 곁을 찾아올 차례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강산은 울긋불긋 다양한 옷 갈아입으며 어김없이 변해갑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사람들 생각입니다. 강산은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생각은 수십 년 세월에도 바뀌지 않습니다. 낡고 오래된 생각은 오히려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남아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어느 때로 기억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북한의 군사 위협이 극에 달할 때가 있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어린 마음이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도 몰려왔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소년은 대나무 숲이 우거진 집 뒷동산에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틈만 나면 삽과 괭이로 흙을 파냈습니다. 몇 달 정도 지난 후 제법 여러 사람이 피신할 수 있는 굴이 완성되었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북한의 핵 공격 위험에 대처하려면 리을 자 형태로 굴을 파 들어가야 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래 힘닿는 데까지 온 힘을 다해 파는 거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 여겼습니다. 생각만큼 쉽진 않았습니다. 약간 무너지긴 했지만 지금도 삼십여 년 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학교에 가면 군사훈련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엔 교련복 입고 나무로 된 총 들고 북한군에 맞서 싸울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관제 데모에 동원되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골목길 시멘트벽엔 '멸공 방첩'이란 구호가 선명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소년은 기꺼이 '멸공의 횃불'이 되고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은 불철주야 경제 부흥에 앞장섰습니다. '우리 모두 굳세게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새 조국을 만드세.' 경제 발전에 도움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 나서던 어른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좋은 것, 맛있는 것, 값나가는 물건들은 수출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런 물건들 만들려고 공장에서 또는 논과 밭에서, 배 위에서 쉼 없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노조 활동은 곧 '빨갱이 활동'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부자로 살려고 부당노동행위도 참아야만 했습니다. 이른바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는 말만 믿으며 있는 노력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참으라고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해 보입니다. 이른바 '안보 프레임'과 '경제 프레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에 이기려고 고등학생에게도 총을 들게 했던, 무조건 참고 견디며 경제 부흥에 앞장서게 했던 그 프레임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작동하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입니다. <프레임>의 저자 최인철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을 비춰보는 창으로서의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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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대에 맞게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도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 역할'을 하는 잘못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걸핏하면 '종북, 좌빨' 빨갱이 타령만 늘어놓는 '안보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어떻게든 참고 견디며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경제 프레임'에서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올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철 지난 이념 논쟁도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탄 대한민국호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먼 미래 향해 순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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