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 소홀했던 도심 속 보물
'시비·꽃·조각' 즐길거리 가득
금빛 돼지 전설 품은 '안식처'

소년은 잔뜩 들떴다.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길이다. 기대감으로 얼굴 근육이 자꾸 춤을 춘다.

창원 마산만, 나직하게 솟은 섬에 배가 닿는다. 앞서 걷는 아버지의 트렌치코트, 맞잡은 손으로 전해지던 어머니의 온기. 청년으로 성장한 소년에게 남은 섬의 기억이다.

돝섬은 물리적으로 가까워 오히려 자주 찾지 않은 섬이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아 충동적으로 돝섬행 배에 오른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추억의 조각을 소환한다. 뭍에서 떠나며 듣기 시작한 4분짜리 노래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섬이다.

선착장에서 해안길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섬의 품으로 곧장 들어가는 걸음은 잠시 아껴둔다. 바늘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따라 섬 둘레를 4분의 1가량 걷는데 '풍덩'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 바다로 시선을 돌린다.

돝섬 유람선에서 본 돝섬 모습.

햇빛을 받아 별처럼 반짝이는 바다 위로 팔뚝 크기의 물고기 여럿이 솟았다 내려가길 반복한다.

장관이 펼쳐지는 순간, 해안가 가까이 줄지어 앉은 갈매기 떼가 보인다. 사냥에 나설 법도 한데 쳐다도 보질 않는다.

섬 한쪽에 볕이 들면 반대쪽은 그늘이 지듯, 먹이사슬에도 나름의 법칙이 존재하는 듯하다.

바다를 보다 고개를 섬 방향으로 돌리면 배롱나무 꽃과 꽃무릇 군락이 반긴다.

돝섬 해안가를 따라 핀 바늘꽃.

해안 전망대에서 보이는 뭍 풍경은 사뭇 묘하다. 한 편의 소설이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급격히 바뀐 기분이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25호 월영대를 노래한 10인의 시비가 놓인 숲길을 지나자 출발점인 선착장이 다시 보인다.

벌써 섬 한 바퀴다. 아쉬운 마음에 출렁다리 위에서 마산만을 바라본다. 파도가 섬을 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바다를 머금은 바람의 형태가 온몸에 전해진다. 출렁이는 다리는 가을의 리듬을 함께한다.

1982년 돝섬은 해상유원지로 옷을 갈아입는다.

돝섬 해안 전망대에서 본 마산 모습.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해수 풀장이 들어섰고, 오락시설과 더불어 동물원·식당·야외 음악당·숙박시설 등이 마련됐다.

공원화한 지금, 섬 꼭대기에 세운 노산 이은상 '가고파' 기념탑만이 옛 흔적으로 남아있다.

9월의 돝섬 정상은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아쉽게도 장미는 지고 없지만, 코스모스 군락만으로도 광경이 훌륭하다.

숨은 24개의 창원조각비엔날레 작품을 찾는 일도 돝섬을 즐기는 방법 하나다.

돝섬 곳곳에서 창원조각비엔날레 작품을 찾는 재미도 있다. 김병호 작가 '21개의 조용한 확장'.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공간 중심에 작품을 놓으니, 꼭 비밀의 정원을 엿보는 기분이다.

선착장에서 뭍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데 문득 돝섬 전설이 궁금해진다. <마산시사>를 참고한다.

전설은 김해 가락왕 총애를 받던 미희가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이 돝섬이고, 실은 밤마다 사람을 잡아가던 금 돼지가 바로 미희였다고 전한다.

군병 손에 죽임을 당한 금 돼지가 무학산 바위 밑으로 떨어지자 동시에 한 줄기 불길한 기운이 섬으로 향했다. 이후 밤마다 섬 주위에는 돼지 울음소리와 괴이한 광채가 일었다.

돝섬 정상에 코스모스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운 최치원이 골포(마산 옛 이름) 산수를 즐기고자 월영대에 향학을 설치한 무렵, 이 괴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돝섬을 향해 활을 쏘았다.

광채는 별안간 두 갈래로 나뉘어 사라졌고, 이튿날 고운이 돝섬에 건너가 화살이 꽂힌 곳에 제를 올린 뒤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전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추억을 찾으러 들렀다가, 신비로운 전설과 새로운 추억 한 보따리를 얻고 간다.

이날 걸은 거리 2.5㎞. 4322보.

돝섬 정상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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