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으로 '재독 망명객'…귀국 후엔 구속
사드 반대·문재인정부 성공 바라며 분신

초가을 들녘에 들풀이 무성하다. 강아지풀, 엉겅퀴, 쇠비름, 쑥부쟁이 등등. 그 이름도 다 헤아리기 어렵다. 한여름 더위와 장마, 폭우를 다 견뎌내고 꿋꿋이도 자랐다. 씨가 영근 강아지풀은 고개를 숙인 채 오가는 이들을 향해 인사를 한다. 성질 급한 녀석은 벌써 가을 맞을 채비를 한다. 두어 달이 지나면 저 들풀들도 모두 스러질 것이다.

'들풀'이란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마지막 재독 망명객'으로 불린 조영삼 씨가 그 주인공이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후 한겨레신문 지국장을 하고 있던 그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를 만나면서 삶이 바뀌었다. 이 씨는 6·25전쟁 때 인민군 종군기자로 참가했다가 체포돼 34년 감옥살이를 마치고 1988년에 석방됐다. 북한 출신인 이 씨는 사고무친한 남한에서 의탁할 곳이 변변치 않았다. 주변에서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 이 씨를 돌본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는 2014년에 쓴 글에서 이 씨의 첫인상을 두고 '두 다리는 한물 간 오징어 다리처럼 흐물거렸고, 한쪽 눈은 꼬챙이에 찔린 동태 눈깔처럼 하얗게 변색하여 있었고, 오른쪽 이마는 전쟁 와중에 포탄을 맞아 움푹 팬 구덩이처럼 커다란 분화구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자폐증을 앓는 어린 아이처럼 말은 어눌했다'고 적었다. 누가 곁에서 도움을 주지 않으면 이 씨는 간단한 씻기는 물론 단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이 씨를 도운 것은 단지 동포애 차원에서였다.

1993년 3월 이 씨는 문민정부의 배려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제1호로 북송됐다. 이 씨는 북한에서 공화국영웅 칭호와 함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지내다가 2007년 사망했는데, 그의 유해는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북송된 지 2년 뒤 이 씨는 그에게 북한을 한번 방문해달라며 초청장을 보냈다. 남한에서 자신을 돌봐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려 했던 것 같다. 그는 1995년 8월 독일과 중국을 거쳐 북한을 방문했다.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방북이었다. 이 일로 귀국하지 못한 채 독일정부에 망명신청을 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져 졸지에 그는 '재독 망명객'으로 불리게 됐다.

그가 독일에서 보낸 세월은 짧지 않았다. 2012년 12월 자진 귀국할 때까지 무려 17년을 그는 타국에서 떠돌이 신세로 보냈다. 귀국하자마자 그는 공항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정원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밀입북 외에도 방북 때 김일성 시신을 참배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항소심에서는 '동방예의지국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에서 이를 파기환송하면서 결국 1년여 감옥살이를 했다.

그 무렵 그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내 개인 블로그의 애독자였는데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교보문고 입구 층층 계단에 앉아 두어 시간 얘기를 나눴다. 경남 밀양에 거처를 두고 있는데 재판 일로 서울에 왔다가 시간을 냈다고 했다. 크지 않은 체구에 선한 얼굴, 말씨는 조곤조곤했다. 투사 같은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갑자기 귀국하고 보니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마치 이웃집 아저씨와도 같은 보통사람이었다.

한동안 잊었던 그의 이름을 뜻밖에 부고 기사에서 접했다. 그는 지난 19일 오후 4시 10분경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18층 잔디마당에서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문재인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고 외치고는 전신에 기름을 끼얹고 분신했다. 급히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이튿날 오전에 결국 숨을 거두었다. 만 58세. 보도에 따르면, 그는 밀양에 거주하면서 '사드 반대' 활동 등을 해왔다고 한다. 평소 평화주의자였던 그의 성정으로 보건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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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분신하기 전에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어린 아들을 부탁한다는 내용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였던 고인은 문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를 확정 짓지 말 것을, 북한 당국을 향해서는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라고 호소했다. 평소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의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던 고인의 들풀 같은 삶을 몇 자 기록해두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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