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건축사회와 함께 통영 건축 기행]
건축사 시민 눈높이 해설
역사·문화적 가치 풀어내
지역 건축물 애정 깊어져

대한건축사협회 경상남도건축사회(회장 조용범)는 17년 전부터 '건축사와 함께하는 건축물 답사'를 하고 있다. 도민들이 전문가 설명을 들으며 건축물 곳곳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 지난해는 경남을 벗어나 대구 근대건축물을 둘러봤다. 올해는 지난 21일 1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통영을 다녀왔다.

답사 참석자들은 "어느 건물이든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건축물은 하나의 종합예술인 것 같다" "집을 내 손으로 직접 지으려 하는데, 건축물을 많이 보면 볼수록 도움 될 것 같다"와 같은 소감을 쏟아냈다. 허정도 건축사가 해설을 곁들인 박경리기념관·통영국제음악당·해저터널·윤이상기념관·통영시립박물관·세병관 모습은 어땠을까?

◇박경리기념관 = 지하 1층·지상 1층 건축물로 지난 2010년 완공됐다. 건축가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류춘수 씨다. 이곳은 박경리 선생 인생관과 문학정신을 담아 최대한 검소하고 간결하게 설계됐다. 가장 큰 특징은 기념관 출입구가 뒤로 나 있다는 것이다. 방문객들이 건물 뒤로 돌아가게끔 동선을 짜놓았다. 이유가 있었다.

박경리기념관 외부 전경. /남석형 기자

허정도 건축사는 "건물 밑을 지나 뒤로 돌아가게끔 하는 누하진입방식이다. 사찰·전시문화 공간에서 많이 쓰는 기법이다. 박경리 선생을 만나기에 앞서, 바깥 떠들썩한 세상을 뒤로하고, 마음 정리할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허 건축사는 "박경리기념관은 훗날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통영국제음악당 = 건립 추진 10년 만에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지난 2003년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추진됐지만, 사업변경·예산·명칭 문제 등의 우여곡절 끝에 2013년 완공됐다.

특히 세계적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가 "인생 최대 역작을 만들고 싶다"며 이곳 설계를 맡았지만, 뒷받침되지 못한 예산 등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옛 충무호텔 터에 자리한 이곳은 탁 트인 통영 바다를 품고 있다.

허정도 건축사가 통영국제음악당을 설명하는 모습. /남석형 기자

허 건축사는 "건물 지붕이 특이하지 않은가? 갈매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예술의 바다 위에 핀 자유의 날개'라고 의미 붙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음악당 내부는 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벽이 직각 형태이며 사이사이 굴곡을 줘 소리가 어긋나지 않도록 했다.

음악당 관계자는 "성악가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무덤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솜씨를 제대로 뽐낼 수 있는 곳이다"고 했다.

◇해저터널 =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건축물로서 가치도 만만찮다. 이곳은 1932년 완공된 동양 최초 바다 밑 터널이다. 바다 양쪽을 막고 바다 밑을 파서 콘크리트 터널로 만들었다.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로 만조 기준으로 수심 13.5m 아래 지어졌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지만, 노동·자재는 온전히 우리 몫이었다. 1967년 인근 충무교 개통 전까지 차량통행이 이뤄졌다. 터널 입구 천장은 목조로 돼 있다. 현재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지정돼 있다.

해저터널. /남석형 기자

허 건축사는 "동양 최초 해저터널이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그 당시 획기적인 공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입구 쪽 목조구조는 매우 섬세하게 이뤄져 있다"고 평가했다.

◇윤이상기념관 = 도천테마파크에 자리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윤이상기념관'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없었다. 통영시에서 이념 문제에 얽혀있는 '윤이상' 이름을 애써 가리려 했기 때문이다. 산청 출신인 민현식 씨가 설계를 맡았다.

이곳은 기념관 건물보다는 바깥에서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념관 바로 앞 야외 공연장이다. 허 건축사는 "객석이 계단 아닌 밋밋한 경사로 이뤄져 있다. 야외 잔디밭에 앉아 즐기는 느낌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윤이상기념관 외부 전경. /남석형 기자

공연장 뒤쪽으로 분수대가 있지만 물은 메말라 있었다. 허 건축사는 자리에 함께한 시 공무원을 향해 "물이 조금만 있어도 찰랑찰랑 이곳을 빛낼 수 있다. 그런데 물 흐르는 걸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다. 관광도시 통영을 외치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통영시립박물관 = 1943년 통영군청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1995년 통영·충무 통합 이후 2002년까지 시청 별관으로 사용됐고, 이후 통영국제음악제 페스티벌하우스로 지정되며 문화예술의 전당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다 2013년 9월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이 건물은 신고전주의에서 근대주의 양식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지어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지난 2005년 4월 등록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됐다. 현재도 건립 당시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통영시립박물관 전경. /남석형 기자

통영시립박물관에서 10여 분간 걸으면 서피랑이 자리하고 있다. 정상에서 세병관 쪽으로 향하는 골목에 '박경리 생가'가 있다. 빨간 벽돌 집으로 외부인에게 개방하지는 않았다.

◇세병관 =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중심 건물이다. 국보 제305호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단일 면적 목조건물 가운데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가장 크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때 통영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면서 일정 부분 훼손·변형은 피할 수 없었다.

세병관 내부는 큰 기둥이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아래로 갈수록 조금씩 굵어지는 민흘림 방식이다. 허 건축사는 "기둥으로 사용된 소나무 수령이 400~600년 정도다. 그리고 기둥으로 세워지고나서 또 410년 가까이 흘렀다. 이 기둥만 놓고 보면 1000년 세월을 견딘 것"이라고 했다.

탐방객들은 세병관 마루에 편안히 누워 잠시 옛 시간에 빠져들었다.

세병관 전경. /남석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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