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는 것도 먹는 것도 아닌 아침 시간
자식만큼은 돈에서 벗어나 살았으면

따지고 보면 바쁠 것도 없는데 아침이면 이유없이 바쁘다. 고3 아들하고 생활리듬을 같이 가져가는 집사람은 6시에 일어나서 7시 전에 출근하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 타이머를 맞춰둔 밥통이 울어댄다. 일어나야 할 시간인데 침대에서 조금만이라고 생각한 마음이 30분을 잡아먹는다. 그 조금만이라고 생각한 30분이 아침을 먹어도 될 자격이 주어지는 시간인데 늑장 부린 시간에 대한 자책이 아침을 굶게 만든다.

종종 굶게 되는 날이면 오전에 일하는 동안 웃으면서 거래처를 돌아도 배가 고프면 속으로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굶는다는 건 30분을 아껴주지만 배고픔은 따라잡을 수 없는 시간 같아서 밥통으로 가 국그릇에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한 번 푼다. 뜨거운 밥을 식은 된장국에 말아 식탁으로 온다. 김치도 없이 젓가락도 필요 없이 미지근한 밥을 된장국과 훌훌 마시면 아침이 된다. 종종 화장실을 가려는 아들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급하게 밥공기를 치운다. 왠지 허겁지겁 쫓기듯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럽다.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아들과 같이 깨어있으려고 내게 방해가 될까 싶어 건넌방에서 잠들었던 집사람의 인기척이 일어나면 현관을 밀고 나온다. 어쩌면 내가 출근하는 현관문 소리가 집사람의 알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속쓰림을 막으려고 된장국에 말아서 약처럼 먹는 아침식사가 집사람에게는 침대에서 조금만이란 시간일지도 모른다. 따뜻하게 데워진 된장국과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이 죄다 식탁에 올라오지만 아들은 밥 반 공기를 먹지 못하고 그나마 절반을 엄마의 빈 그릇에 덜어낸다.

사람은 태어난 시대를 살아간다고 한다. 내 아버지가 굶어도 자식들 교육은 시켰고 내가 그 시대를 이어받았다. 고3 교육비가 부부의 노후를 빈곤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지만 아들을 잘 키우고 싶다. 가능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고 싶은 일을 참고, 돈 잘 버는 일을 한다고 돈을 더 잘 벌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돈도 중하지만 인생도 한번뿐이라고. 한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벌라고 말이다. 아빠처럼 아침을 굶지 말고, 쫓기듯이 살아가지 말라고.

바람이 불면 양팔을 벌려서 바람을 안으면서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빠의 시간에 돈을 벌고 그 돈이 아들의 시간을 사는 것만 같다. 능력이 없어서, 배우지 못해서 가난하게 살지 말라고. 배우지 못해서 능력이 없다는 건 가난하게 살게 된다는 것이고, 그건 평생에 걸쳐서 자기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서 말이다. 차마 아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모의 가난 때문에 힘에 부치는 교육비를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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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아침 먹을 시간이 없다고. 주말에 여행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가족의 따뜻한 저녁 시간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대신에 공부하라고 한다. 공부하라고 하면 스트레스받을까 봐 조용히 학원비를 댄다. 부부의 노후에 필요한 돈이든, 당장에 은행빚을 갚아야 할 돈이든 따지지 않고 학원비를 댄다. 할 수 있거든 함정에 걸린 짐승처럼 살지 말고 바람이 불면 양팔을 벌리라고 말이다. 누군가 눈이 마주치면 네 느낌대로 그 눈빛을 따라가 사랑하고, 어떤 일이 네 심장을 뛰게 하거든 망설이지 말고 그 일에 뛰어들라고 말이다.

사람이든 제도든 무엇이든 너의 아침식사를, 너에게서 가족에게 필요한 시간을 빼앗으려 하거든 망설이지 말고 칼을 뽑아들라고 가르치고 싶다. 굶는 것도 먹는 것도 아닌 아빠의 아침식사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아들의 인기척에 놀라 아침식사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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