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일기] (7화) 불편한 명절
열흘에 이르는 추석 연휴, 취준생에겐 고통의 시간
공부 등 이유로 친척 피해

나는 유달리 길었던 올해 추석 연휴가 달갑지 않았다. 설날 이후로 도통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던 가족과 친척을 만나는 게 무서웠다. 게다가 맞춰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계획한 것을 더욱 쉼 없이 내가 달리려고 하는 만큼 달릴 수 있는 열흘이라는 '멍석'이 고통스러울 것만 같았다.

여느 명절 때와 같이 어른들이 묻는 말에 꼬박 답을 하고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을 준비하며 나의 '도리'에 충실한 게 보통의 나건만, 삼삼오오 모여 '안녕 아닌 안녕'을 묻는 우리 전통문화가 미워지려고 할 만큼 이번에는 유독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은 어김없이 틀림없듯, "연휴가 기니까 며칠 먼저 와 있어라"는 아버지의 전화에 나는 단 하루라도 더 자취방에서 '평온'을 찾고자 갖은 핑계를 대가며 갈등을 이어갔다.

오랜만에 찾아올 아들이 이렇게 나오니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과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차가 밀리지 않으면 5시간 즈음 걸릴 명절 길에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몇몇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번 명절엔 가족들을 찾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당장에 맞물려있는 시험이나 면접 등 물리적인 압박감보다는 친지들을 만나 이런저런 질문을 들으며 받게 될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은 이유가 컸다.

나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상당히 많다는 데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우리가 '안착'할 수 있는 지점이 생각보다 좁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지루한 여정 끝에 도착한 집에선 여지없이 질문이 떨어졌다. 생각보다는 고통이 덜했다.

지금 계약직으로 일하는 곳이 '공공 기관'이었던 게 그야말로 방패가 되어줬다.

친척 몇이 집요하게 나의 안녕을 물어보긴 했지만,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내가 있는 일자리가 일종의 '직업'이기도 하니 노골적으로 아팠던 질문은 없었다.

다만,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공공기관 계약직 정규직 전환 뉴스를 보다 "너는 능력이 안돼서 전환이 안 됐냐"는 말이 나왔고, 다소 화가 치밀어 오르기는 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 전혀 다른 경험, 어쩌면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도전했던 수개월이 외려 비참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누구라도 꺼내고 싶지 않을 민감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처럼 지극히 사적이며 감추고 싶은 일들이 하나의 사건이 아닌, 나와 같거나 비슷한 이들 또한 어김없이 겪고 있을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교적 가치관에서 비롯한 서열이 '말하는 역할'과 그저 '수용하는 역할'로 갈리고 그 누구도 만족하기 어려운 '도리'로 결국 누군가는 미안해서, 혹은 마음이 혼란해질까 고향조차 찾아가기 어려운 상황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찍 돌아온 자취방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공부 때문에 일찍 간다는 말도 결국 핑계가 됐다.

닥치지도 않았던 상황에 이미 느꼈던 공포와 여지없이 찾아왔던, 그래서 아무렇지 않을 법한 상황에 나는 또 감정이 흐트러졌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 하는 이는 결국엔 '꼰대'에게 종속되고 만다는 말이 나를 가다듬어줄 뿐이다.

학생에겐 성적과 대학을, 백수에겐 취업을 묻는다. 또 직장인에겐 결혼, 첫째를 낳으면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며 가릴 것 없이 묻는 우리의 안녕은 결코 고맙기만은 어렵다.

/시민기자 이지훈

'취준생 일기'는 고단한 취업 전쟁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취업준비생 이지훈(26) 씨의 이야기입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