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양산이다. 이곳은 고리 핵단지로부터 30㎞ 안에 대부분 포함되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논란은 참으로 황당하다. 우리는 대통령을 믿었다. 특히, 대통령 후보시절인 지난 4월에 탈핵 진영과의 정책협약에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는 졸속 승인을 자행한 지난 정권의 잘못과 적폐를 청산하는 강한 의지로 보았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정책협약서에서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의 건설을 잠정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운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약속이 후퇴하거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단 500명 성 비율이나 연령 비율, 지역별 분포도를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0년을 가동할 핵발전소의 운명을 앞으로 살아갈 젊은 세대보다 50, 60대가 절반 가까이 참여해 결정하는 형국이다. 이는 핵폐기물이나 만일의 사고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할 다음 세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매정한 결정이다.

지역 분포에서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서울이나 경기도는 고리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과 핵발전소 사고 위험에 대해 느끼는 온도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 500명 중 신고리 5·6호기와 인접해 있는 부산·울산·경남 주민은 겨우 67명(13.4%)이다. 탈핵을 공론화하는 것이 아니라, 부울경 주변에 들어서는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공론화이다.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 때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단 9명이 신고리 5·6호기를 졸속으로 승인했다. 5명은 대통령 권한으로 지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2명은 야당 몫, 2명은 여당(전 새누리당) 몫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진 안전성 평가 부실, 인구밀집지역 위치제한 규정 위반 등 온갖 반칙이 저질러졌다.

정권이 바뀌었다. 지난 6월 19일 대통령이 고리 1호기 폐쇄식에서 언급했듯 '새 정부 원전 정책의 주인은 국민'이다. 작년 9월 규모 5.8 경주지진을 겪으며 공포에 떤 국민이, 600회가 넘는 여진을 경험한 국민이, 활성단층판이 60여 개나 존재하는 주변에 들어설 신고리 5·6호기 핵발전소를 누가 원하겠는가?

핵발전소를 운명처럼 지고 살아가야 할 지역에 대한 배려 없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공론화. 사고 시 전역이 피해 반경에 속하는 양산 주민으로서 公(공)론화의 空(공)허한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公론화가 空론화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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