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귀농으로 고향 생겼다는 아들
늦게라도 고향 물려줄 수 있어 다행

잘 알고 지내던 친구가 까닭 없이 몸이 무겁고 자주 아파 크고 이름난 병원을 찾아 온갖 검사를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특별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여기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는 어느 한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친구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의사가 '특별 처방'을 내렸습니다. "일 년 동안만 산골 마을에 가서 살아보세요. 세상 걱정 내려놓고 땀 흘려 농사지으며 지낸 다음에 다시 진찰받으러 오세요."

그 친구는 한의사가 시키는 대로 산골 마을에 들어가서 작은 흙집과 논밭을 조금 빌려 땀 흘리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시며 산과 들에 나는 나물로 밥상을 차려 먹었더니 하루하루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일 년이란 세월이 금세 흘러갔지요. 그 친구는 다시 한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아픈 데가 있느냐고 묻는 한의사한테 그 친구는 아픈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문득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날마다 마시는 물조차 돈을 주고 사 먹는 도시에서, 날마다 마시는 공기조차 자동차와 공장 매연 따위로 더럽혀진 도시에서, 돈이 있어도 먹을거리조차 마음 놓고 사 먹을 수 없는 도시에서, 어른들이 억지로 시키는 '공부'에 시달려 마음껏 뛰놀 수조차 없는 도시에서, 그 도시에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 아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하지 않다면 어른들도 결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만일 어른 가운데 어느 누가 자신 있게 '나는 행복하다!' 라고 해도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찌 그 행복이 오래 갈 수 있겠습니까? 자연 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지 못하고, 오염된 환경과 온갖 비리와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을 물려주게 되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이라는 괴물한테 몸과 마음을 빼앗겨 앞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잘났든 못났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가치체계와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13년 전에 귀농하여 산골 농부가 되었을 때 도시에 살던 아들 녀석한테 받은 편지입니다. "아버지, 누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퍼뜩 떠오르지 않아 고향이 없다고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스무 살이 넘도록 도시 셋방살이 떠돌아다니며 정 붙이고 살아갈 마을 하나 없이 그저 '흔적들' 위에서만 살았습니다. 이젠 제게도 돌아가고 싶은 어머니 품 같은 고향이 생겼습니다. 황매산 자락에 자리 잡은 조그만 산골, 이름도 고운 '나무실 마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귀농'을 하시는 바람에 마침내 제게도 고향이 생겼습니다. 작은 흙집 마당에 들어서면 기분 좋은 흙냄새가 나고, 오래된 감나무 아래 평상이 있어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기에 딱 좋습니다. 장독대 앞에는 분꽃과 봉숭아가 활짝 피어 바라만 봐도 흐뭇합니다. 작은 텃밭에는 상추, 부추, 고추, 토마토 들이 쑥쑥 자라고, 앞집 지붕을 타고 오르는 호박 덩굴은 크든 작든 무엇이든 잡히는 대로 감고 제 갈 길 갑니다. 한쪽 벽 아래엔 군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있어 석유나 가스가 없어도 겨울 내내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살더라도 그리움 가득 안고 달려갈 수 있는 어머니 품 같은 고향이 생겼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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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도시에서 아득바득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자식들에게 고향을 물려줄 수 있게 되었으니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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