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 하나의 현상일 뿐, '경중' 상관없이 원인 규명 필요
종류만큼 치료 방법 다양…철분제 무분별한 복용은 되레 '독'

'빈혈'을 여성이라면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증상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질환이라기보다는 '연약함'과 '여성스러움'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정말 빈혈이 누구나 쉽게 앓고 지나가는 가벼운 감기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병일까.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경태 교수의 도움말로 빈혈에 대해 알아본다.

◇빈혈이란

빈혈은 혈액에서 산소와 영양소를 운반하는 혈색소량이나 적혈구 크기·수가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혈색소량이 성인 남자는 13g/㎗ 이하, 성인 여자는 12g/㎗ 이하일 때 빈혈이 있다고 진단한다.

빈혈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는 것이 어지럼증. 그래서 일반인들은 어지럼증이 있으면 빈혈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원인 중 하나가 빈혈일 뿐이다.

박 교수는 "어지럼증을 빈혈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귀나 뇌에 문제가 있을 때, 부정맥일 때 등 여러 원인에 의해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어지럼증이 있으면 먼저 빈혈 유무를 확인하고, 혈액 검사에서 이상이 없으면 이비인후과나 신경과, 순환기내과 등에서 원인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혈색소량에 따라 빈혈의 정도를 나누는데, 10~12g/㎗의 '가벼운 빈혈'은 대부분 증상을 잘 느끼지 못해 건강검진이나 타 질환으로 혈액검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8~10g/㎗는 중간 정도의 빈혈, 8g/㎗ 이하는 심한 빈혈로 진단한다.

박 교수는 "심한 빈혈인 경우만 치료 대상으로 여기고, 가벼운 빈혈은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빈혈은 분명한 질병이다. 경중에 관계없이 증상이 있으면 모두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빈혈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종류나 원인에 따라 다른 장기의 원인이 빈혈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빈혈은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먼저 적혈구의 생성 부전에 의한 빈혈, 적혈구의 내부 또는 외부 원인에 의해 적혈구가 과다하게 파괴돼 생기는 용혈성 빈혈, 출혈로 적혈구 소실에 의한 빈혈로 크게 나눈다.

적혈구 생성 부전에 의한 빈혈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적혈구를 만들어내는 골수 내 적혈구 모세포의 결핍 때문에 생기는 재생불량성 빈혈, 백혈병과 같이 골수를 암세포가 차지해 정상적인 적혈구가 부족해 생기는 빈혈, 적혈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인 철분, 비타민 B12 또는 엽산 부족으로 생기는 철결핍성 빈혈, 비타민 B12 또는 엽산 결핍성 거대적아구성 빈혈 등이 있다.

박 교수는 "혈색소 수치를 중요하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빈혈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철결핍성 빈혈은 5g/㎗ 이하로 심해도 생명에 중요한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생불량성 빈혈은 10g/㎗라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혈색소 수치만으로는 빈혈 원인 파악을 할 수 없다. 빈혈이 있으면 경증이라도 반드시 검사해 원인과 종류를 파악해야 한다. 이에 따라 치료방법이 달라진다. 빈혈 정도는 치료기간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예를 들어 혈색소 수치가 각각 8g/㎗와 11g/㎗인 철결핍성 빈혈 환자가 있다면, 두 사람 모두 같은 치료를 한다. 다만 치료 기간에서 치아가 있다"라고 밝혔다.

삼성창원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경태 교수. /이원정 기자

◇종류 따라 치료법 달라

빈혈은 종류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므로 원인과 종류 파악이 중요하다. 빈혈 종류가 무엇이며, 이런 빈혈을 초래한 원인 질환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특화된 적절한 치료법을 결정한다.

결핍성 빈혈인 철결핍성 빈혈이나 거대적아구성 빈혈은 부족한 철분이나 비타민 B12, 엽산을 투여하고, 용혈성 빈혈은 용혈 원인에 따라 스테로이드 등 면역억제제를 투여하거나 비장절제술 등을 한다. 재생불량성 빈혈은 조혈모세포이식술이나 면역억제요법을 하게 된다.

박 교수는 빈혈 환자의 무분별한 철분제 복용을 경계했다.

박 교수는 "일반적인 건강 검진의 혈액검사에서 혈색소 수치가 낮은 것만으로는 전문가가 봐도 빈혈 종류를 알기 힘들다. 따라서 정확한 원인 파악 전에 미리 철분제를 복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빈혈약=철분제'라고 생각하고 빈혈이 있다고 하면 철분제를 쉽게 먹는 환자가 많다. 또 대부분 철분제를 먹고 나면 낫는다고 느끼기도 한다. 철결핍성 빈혈이 제일 많으므로 철분제를 먹고 낫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종류의 빈혈 환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어떤 종류의 빈혈인지 확인하지 않고 의사 처방 없이 철분제만 수개월 복용했으나 증상 호전이 없어 뒤늦게 병원을 찾아 검사한 결과 백혈병으로 진단된 경우도 있다고 박 교수는 전했다.

박 교수는 "빈혈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철분제만 먹다가는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철분제 과다 복용은 자칫 독이 될 수도 있는데, 부족한 사람에게는 철분제가 유용하게 작용을 하지만, 부족하지 않은 사람에게 과다 축적되면 심장, 뇌, 간과 같은 장기 기능이 망가진다"고 충고했다.

철결핍성 빈혈 환자가 철분제를 복용해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되면 약 복용을 중단하게 된다. 물론 재발할 소지는 있다. 따라서 3~6개월 후 다시 검사를 해서 경과를 관찰하게 된다.

철결핍성 빈혈도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주로 젊은 여성에게 많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박 교수는 "노인에게 철결핍성 빈혈이 생기면 위암이나 대장암 여부를 꼭 확인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악성 질환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골수검사 필요하기도

빈혈이 의심되면 먼저 혈액검사로 적혈구수, 혈색소량, 적혈구지수, 혈소판 수 등을 파악하고, 말초혈액 도말검사를 시행한다. 이런 검사로 빈혈 유무와 정도를 알 수 있고 종류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확진을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검사를 추가로 시행한다. 예를 들어 철결핍성 빈혈이 의심되면 혈청 철, 철결합능 등을 측정하고, 재생불량성 빈혈 등이 의심되면 골수검사를 한다.

박 교수는 "골수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예전에는 빈혈 환자 모두에게 골수 검사를 했으나, 요즘은 혈액검사만으로 철결핍성 빈혈 등은 진단 가능하므로 이때는 굳이 골수 검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결핍성 빈혈이 아니면 원인 파악을 위해 골수검사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주로 묻는 것은 골수검사가 아플까 혹은 위험할까 하는 것.

박 교수는 "솔직히 혈액검사보다 조금 더 아프기는 하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두려워하고 피할 정도는 아니다. 골수는 주로 엉덩이뼈에서 뽑는다. 이는 엉덩이뼈가 편평해 뽑기 쉽고 신경이나 혈관이 비교적 적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골수 내에는 신경이 없으므로 통증이 없고, 골수를 싸고 있는 골막을 뚫을 때 통증이 있으므로 국소 마취를 한다. 검사 후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의사가 골수 검사를 지시했다면, 위험한 질환일 가능성이 크므로 피하지 말고 꼭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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