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정치보복' 정치권 관점 대립
자신에 유리하게 바꾸고자 프레임 전쟁

최근 정치권에서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이라는 상반된 단어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두 단어를 듣는 순간 누군가는 말장난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어느 것이 적절한 표현인지를 고민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왜 이런 논쟁을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이 논쟁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분명한 것은 현재 두 정치진영은 이 문제에 사활을 건 듯하다.

정부와 여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온갖 비리와 의혹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규정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친이명박·박근혜 세력은 적폐청산 움직임을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두 단어가 충돌하는 것은 같은 사안을 각자에게 유리한 전혀 다른 틀(프레임)에 끼워서 바라본 결과이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마음의 관점이다.

일상생활에서 편견은 사회적인 지각과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편견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우리 마음을 유도한다. 편견이 프레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프랜시스 아보우드 교수는 어린이에게조차 일상적인 편견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다. 백인 어린이 6명에게 좋은·친절한·깨끗한 등 긍정적 형용사를 주었으며, 또 다른 백인 어린이 6명에게 비열한·잔인한·나쁜 등 부정적 형용사를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두 장의 그림을 준 뒤, 각각의 형용사를 그림과 짝지어 보라고 했다. 모든 그림에는 한 명의 백인과 한 명의 흑인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의 70%가 긍정적인 형용사를 백인 얼굴과 짝지었고, 부정적인 형용사를 흑인 얼굴과 짝지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편견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습된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만들어진 편견은 나이, 정보, 지식수준과 상관없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흔히 나이가 들수록 편견이 심해진다고 말한다. 한번 형성된 프레임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나이가 들수록 단단해진다. 미국 프린스턴대 래리 바텔스 교수는 1990년대에 한 설문조사를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정당편향성이 강한 유권자들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확신한다.

바텔스 교수는 이들이 정말 합리적인지를 조사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첫 번째 재임기간에 재정적자가 90% 이상 줄었다. 1996년에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클린턴 집권 상황에서 재정적자가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고 묻자, 재정적자가 더 늘어났다고 대답한 사람이 응답자의 55%를 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보에 밝은 유권자나 정보에 어두운 유권자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텔스 교수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도 당파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미 확증하고 있는 정보만 습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많은 언어학자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똑같은 의미가 있더라도 다른 표현은 듣는 사람에게 다른 사고를 하게 한다. 즉 표현을 바꾸면 상대방의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기도를 하며 담배를 피우는 것과 담배를 피우며 기도를 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다르지 않지만 왠지 기도를 하는 중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잘못된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기도를 하는 것은 괜찮은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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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같은 사안이라도 표현만 달리함으로써 프레임을 바꿀 수 있다. 일단 프레임이 흔들리면 기존 사실에 의문을 가지거나 관점이 달라지면서 전혀 다른 시각이 생기게 된다. 자신에게 불리한 프레임에 다른 프레임을 접근시켜 핵심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서로 자신의 프레임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려는 이른바 '프레임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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