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파멸 영화면 과거 바꿔 막겠지만
새로 짓는 원전 2기, 현명한 선택일까

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을 타임슬립(time slip)이라고 한다. 게임이나 판타지, SF 장르에서 많이 사용되는 소재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타임슬립 소재의 영화가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국내 방송에서도 타임슬립 소재를 활용한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다. 시간을 거스르는 일, 불가능하지만 간절히 바랄 때가 많다. 그런 점이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로 사용되는 이유다.

살면서 종종 '내가 그때 이렇게 했다면, 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주 흔한 예를 들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다면', '그때 어느 회사 주식을, 어느 지역 땅을 샀었다면'과 같은 생각이다. 미래의 결과를 알고,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상황을 좋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다. 공부나 주식, 부동산과 같은 것은 아쉬움 정도는 있지만 절박한 것은 아니다. 죽음과 파멸의 상황이 닥친다면, 그것의 원인이 된 과거의 시간이 아주 커다란 후회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선택이 현재에 재앙을 일으켰을 때, 돌이킬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길 간절히 바랄 것이다.

타임슬립 소재를 다룬 영화 중에 <터미네이터>가 있다. 모든 전략 무기를 통제하는 컴퓨터 시스템 '스카이넷'이 지능을 갖게 되고, 핵전쟁을 일으켜 인류 문명을 파멸시킨다. 인간 생존자들은 '존 코너'라는 영웅의 활약으로 반란군을 결성하게 되고, 탁월한 지휘력과 전투력으로 스카이넷을 파괴하기 직전까지 간다. 스카이넷은 타임머신을 만들어 인간 반란군의 영웅을 제거하려고 '터미네이터'라는 전투 로봇을 보낸다. 인간도 그에 맞서 과거로 전사를 보낸다.

미래에 인류는 파멸할 수 있다. 영화는 파멸을 막기 위해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타임슬립이 불가능하다. 파멸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며칠 전, 우리는 중대한 선택을 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중단하지 않고 진행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공약했다. 하지만, 이미 공사가 시작된 신고리 5·6호기는 중단할지 진행할지 여론이 분분했다. 공사 중단 찬성과 반대 주장의 핵심은 원전의 위험성과 비용이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방사능은 치명적이고 항구적인 피해를 준다. 사고의 규모도 엄청나다. 조금 떨어져서는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있고, 가깝게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있다. 만에 하나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원전 사고가 우리나라 고리에서 발생한다면,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 있다.

반면, 중단 반대쪽은 원전 사고 확률이 낮다고 한다. 안전하게 잘 관리만 하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거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는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한 거고, 일반적으로는 100만 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공사가 진행돼 수조 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매몰비용으로 처리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리고 원전이 없으면 전기료가 비싸진다. 이런 찬성과 반대 주장은 공론화위원회의 토론 과정을 통해 공사 진행으로 결론을 냈다. 이로써 우리는 최소 30여 년 동안 원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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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2기를 새로 건설하는 선택, 정말 현명한 선택일까? 이미 쓰러질 것 같은 젠가 게임에서 나무토막 2개를 동시에 뺄 때처럼 불안하다. 지금 원전 공사를 진행하기로 한 우리 사회의 선택이 미래에서 파견된 터미네이터, 인류 종결자의 선택인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공상을 해본다. 타임슬립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아직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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