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쿼이아 아래서 밤을 음미하다

메타세쿼이아는 성장이 빠르다. 게다가 크기까지 하니 가로수로 널리 심는다.

1980년대 초반 창원지역은 지금과 달리 대부분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벌판에 가까웠다. 1982년 충혼로를 시작으로 용호로, 창원대로 등에 메타세쿼이아가 심어졌다.

국내 최초 계획도시에 신속한 녹화가 필요했고, 특성상 메타세쿼이아가 낙점됐다.

메타세쿼이아가 들어선 용호동 가로수길은 일찍이 조용한 주택가였다. 가까이 자리한 여러 공공기관을 상대로 문을 연 밥집 몇 군데가 전부였다.

어느새 이곳에 카페와 식당이 하나둘 들어섰다. 가로수를 따라 카페거리가 생기더니, 급기야 공식적인 길이름을 밀어내고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가로수길과 만나 교차점을 형성하는 거리에는 '세로수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이곳에도 카페와 식당이 줄을 지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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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오후 7시께 가로수길에 자리한 레예플라워 디자인에서 열린 제10회 레예 콘서트 ‘환기’ 현장 모습. / 최환석 기자

자연히 월세가 급격히 상승했다. 아늑한 분위기에 이끌려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기존의 예술가나 세입자는 주변 동네로 떠나야 했다.

지금도 카페와 식당이 문을 닫으면, 또 다른 카페와 식당이 자리 잡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본의 총집합". 어느 가로수길 주민은 이 모든 현상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메타세쿼이아가 지닌 특성 또한 문제가 됐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무의 뿌리는 보도블록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하수관을 막는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나무가 있으면 그늘이 있다. 그늘은 가로수와 맞닿은 주택을 침범했다. 여름에는 기온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겠으나, 겨울의 나무 그늘은 추위를 더한다.

기존 주민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도로를 점령하는 차량 탓에 주차난을 호소한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시원스럽게 트인 가로수길 이면에도 이물질이 침착한다.

메타세쿼이아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까. 메타세쿼이아는 단지 빠르고 우람하게 성장하는 본연의 성질만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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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수길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제10회 레예 콘서트 ‘환기’ 현장. / 최환석 기자

가로수로 선택하고, 메타세쿼이아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가로수길'을 조성한 것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창원 가로수길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물론 메타세쿼이아가 있기에 가능하다.

오랜 세월에도 원래 모습을 잃지 않아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메타세쿼이아는 몸체에 낀 이끼조차 멋스럽다.

단정함과 웅장함을 고루 갖춰 고상하기 그지없다. 초록 물결이 싱그러움을 연발하다가도, 옆으로 퍼진 가지에 붉은빛을 띤 갈색 단풍이 드는 가을에는 사뭇 진지하다.

창원 가로수길의 메타세쿼이아는 밤에 보아도 사랑스럽다. 가을의 문턱인 지금, 가로수길 상점에서 새어 나온 조명은 메타세쿼이아를 더욱 운치 있게 장식한다.

지난달 14일 오후 7시 가로수길에 자리한 레예플라워 디자인에서 열린 제10회 레예 콘서트 '환기' 현장. 유라시아, 지욱, 에이트레인 등의 연주는 가로수길을 찾은 이들 발걸음을 붙잡았다.

메타세쿼이아와 음악, 사람이 한데 얽힌 모습은 가로수길이 존재하는 까닭을 잘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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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수길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제10회 레예 콘서트 ‘환기’ 현장. / 최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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