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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주의 작은 영화] (7) 아이들은 자란다

여섯 살 소년 메이슨의 성장기 다룬 〈보이후드〉
해고된 아빠 오랜 시간 지켜본 현우 〈안녕 히어로〉
열여덟 소녀들의 댄스스포츠 도전기 〈땐뽀걸즈〉
세상을 해석해나가며 '성장'하는 그들이 아름답다

2017년 11월 02일(목)
시민기자 조정주 webmaster@idomin.com

3년 전, 딱 이맘때쯤이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생 영화'라며 영화 한 편을 추천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였다. 감독은 여섯 살 소년을 캐스팅해 무려 12년간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촬영한 시간은 1년에 사흘씩 총 20여 일. 짧은 듯 긴 시간을 그러모아 감독은 메이슨이란 소년의 성장을 165분 안에 담아냈다.

실제 시간을 스크린으로 그려낸 감독의 능력은 대단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 자체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더 많이 이야기했다. 주인공이 내가 되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경험,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영화 같은 순간을 발견하는 경험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메이슨의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관계, 그로 말미암은 갈등과 고민에 공감했다. 메이슨 부모의 나이 듦에 마음이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마음이 닿는 부분은 달라도 각자 '성장'을 주제로 영화를 만나고 있어 재미있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얼마 전 한영희 감독의 <안녕 히어로>를 보다가 불쑥 <보이후드>가 떠올랐다. <안녕 히어로>의 주인공 현우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인 아빠를 지켜보며 자랐다. 옥쇄 파업 현장에서 장비를 타고 놀던 9살 꼬마는 영화 속에서 14살 소년으로 성장한다. 배경과 장르가 다르고, 영화가 담아낸 시간도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여섯 살 소년 메이슨의 12년에 걸친 성장을 보여주는 영화 〈보이후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우는 7년 동안 키도 훌쩍 크고 교복도 입게 되지만 아빠는 여전히 투쟁 현장에 있다. 카메라는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현우의 시선을 따라간다. 현우는 게임을 하면서도 TV는 뉴스 채널을 맞춰놓는다. 아나운서가 아빠가 있는 현장 소식을 전해준다. 국회의원 보궐선거 운동원으로 일하는 아빠를 응원하러 집을 나서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현우는 아빠가 밤낮으로 바쁜 이유를 알게 됐다. 해고자 명단에 없었지만 파업에 동참했고 그 때문에 1년간 수감생활을 한 사실도 알게 됐다. 누가 읽을지 모르는 글을 쓰고, 친구들이 안 될 거라 이야기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아빠를 현우는 묵묵히 응원한다.

10대 자녀를 통해 노동자 투쟁을 보여주는 <안녕 히어로>는 기존에 없던 시선이라 새롭다. 무엇보다 영화는 귀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동료를 위해 행동한 아빠를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상황에서 아빠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하는 현우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아빠를 통해 세상을 보고 겪은 것들을 말할 때 관객은 한 뼘은 더 깊어진 소년의 시간을 느끼게 된다.

한 감독이 담아낸 성장이 쌉싸름한 맛이었다면 이승문 감독은 달콤쌉싸름한 맛을 내민다. 이 감독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거제에 들렀다가 우연히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댄스스포츠반을 만났다. 특별한 에너지를 느낀 감독은 친구들을 6개월간 촬영했고, 그 시간을 다듬어 다큐멘터리 <땐뽀걸즈>로 정리했다.

2학년 '땐뽀반'(땐스스뽀츠) 학생들은 전국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안 따라주지만 과정을 즐기며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춤춘다. 발랄하게 스텝을 맞추는 아이들 사이사이로 조선업 불황으로 힘들어진 거제의 모습이 슬쩍 비친다. 불황은 아이들의 현실도 흔들어놓지만 카메라는 그 혼란을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가만히 지켜본다. 덕분에 <땐뽀걸즈>는 소녀들이 내는 빛으로 반짝반짝하다. 암울한 상황도 리듬으로 만들며 '지금', '여기'에서 자유롭게 춤을 춘다. 삶의 한 시기에서 온 힘을 다하는 소녀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친구들의 가장 빛나는 지금 이 순간들을 찍고 싶었다던 이 감독은 그 바람을 스크린에 그려냄과 동시에 아이들의 고민과 즐거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건강하게 옮겨냈다.

국어사전은 '성장'을 몸무게가 늘거나 키가 커지는 현상으로 설명하지만 사람의 성장은 더 범위가 넓다. 사람이 온전히 두 발로 서려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 삶의 중심이 될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아마 그 과정은 어렵고 힘들고 복잡할 것이다. 그러니 <보이후드>와 <안녕 히어로>, <땐뽀걸즈> 같은 영화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눕고 뛰고 흔들리며 성장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면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스크린 앞에서 시간을 달려올 다른 아이들을 기다려본다.

/시민기자 조정주(진주시민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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