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 지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 차분한 호흡에 몰입
총 3부로 시 64편 실어

'내가 버린 남자는/달인//단 10초 만에/달달한 왕도넛을 백 개나 튀기지//흰 가루를 먹고 자란 아이는/아무 데서나 입 맞추고 배꼽 맞추고//설탕은 안 썩고 밀가루는 더 안 썩고/우리가 부풀렸던 흰 가루는 다 어디 간 걸까//내가 버린 여자는/달인//하루에 열두 편씩 서정시를 쓰지/물뱀의 혓바닥으로//나는 흑이냐 백이냐 헷갈리고 있지/구멍만 남은 도넛을 입에 물고'('구멍만 남은 도넛' 전문)

사천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조민이 시집 <구멍만 남은 도넛>을 펴냈다. 책은 총 3부로 나눠 64편의 시를 담았다.

김상혁 시인은 '작품 해설'에서 "조민 시인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는 생각이 없다. 조민은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다. 그녀의 언어는 시의 정서가 자기 위로나 타인을 향한 연민으로 빠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 한다"고 적었다. 어느 문장은 종종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아니면 다음 페이지에 실린 다른 시편에서 곧 시인의 차분하고 냉랭한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

김 시인은 "시의 정서에 완전히 빠지게 가까이도 아닌, 그렇다고 시적 대상을 아예 외면하게 먼 곳도 아닌, 그런 거리에 독자는 붙들려 있다"고 평했다.

저자 조민은 2004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조용한 회화 가족 No.1>이 있다.

148쪽, 민음사,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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