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후세에 남기려한 진경산수화를 다시 생각한다. 경남 거창군에서 경북 김천시를 잇는 국도3호선 우두령∼주상 구간 설계도 공개 당시 본능적으로 돋던 우려가 서서히 도로의 틀이 드러나면서 더 큰 우려로 자리 잡았다. '전국 아름다운 숲' 동호숲의 정취가 도로 신설로 심각한 훼손에 직면했다.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에 자리한 동호숲은 500년 넘게 전통 숲으로 있었다. 계수천 다리 너머 멀리 숲으로 다가가는 길은 조선의 진경산수화에 보이는, '이상향을 향해 난 길'로도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사람살이도 달라져 숲은 개간돼 점차 위축되고, 때때로 돌풍이나 폭설에 시달려 울창하던 숲도 드문드문 휑하기도 하다. 숲을 지나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도 하나둘 대처로 떠나면서 숲도 그 시세를 따랐다.

그럼에도, 전통 숲 동호숲에 대한 마음은 간절하다. 2013년 동호마을 사람들은 마을 뒷산 송이 판 돈을 모아 숲에 잇댄 논밭 몇천 평을 사들이고 거창군은 나무값을 마련해 숲 복원에 나섰다. 그렇게 심은 소나무들은 몇 해를 거치면서 생기 있게 접합되어 떨어져 나갔던 숲 한 귀퉁이를 되살렸다. 그 정성은 동호숲이 2014년 '전국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는 결실로 이어졌다.

이제 동호숲은 다른 차원의 위기에 직면했다. 국책사업인 국도 3호선 확장도로와 조화해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린 것이다. 신설 도로 공사는 숲이 목을 축이듯 계수천에 길게 뻗은 목을 자르며 4차로로 전면을 가로질러 진행 중이다. 다리 너머 조망하던 산수화 화폭의 정취는 사라지고, "동호마을도 이제 끝났다!"라는 자조의 말이 떠돈다.

이 구간의 몇백 미터만 설계를 바꾼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거창 성기성을 끼고 북향하던 도로는 계수천을 한번 건너면, 할미들을 달리며 좌우 펼쳐지는 웅양의 너른 들판을 음미하게 된다. 개울 너머로는 한 폭의 동호숲을 온전히 담게 되어 강과 숲이 어우러지는 시야를 얻는다. 도로는 이어 동호 다리와 인상적인 교차를 하게 되면, 인공이 이렇게 멋스러울 수도 있다는 효과를 얻게 된다. 걸작으로 탄생한 동호 다리 교차점 어딘가에 탐방객은 내려 '전국 아름다운 숲' 동호숲으로 향하는 고즈넉한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성토가 진행되는 기존의 설계구간은 어찌할 것인가? 숲길로 태어나길 제안한다. 역사문화를 지닌 성기성에서 자연문화 동호숲까지 이어지는 영감과 체험의 역작이 될 것이다. 남해군 바닷가에서 출발하는 국도3호선이 평북 초산의 압록강 강둑까지 이어 달리는 통일시대 간선도로의 긴 여정 중에 발길을 멈추고 심신의 휴식을 얻는 장인정신의 결실이 될 것이다. 21세기 개발이라면 그랬으면 한다. 새로운 길은 이제 '파괴'가 아니라 곳곳의 묘미들을 구슬 꿰듯 가치를 살리는 미래지향의 길이었으면 한다. 늦었다 싶은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국토교통부, 국회, 경남도, 거창군과 군의회 등 요로의 결단이 요청된다. '전국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되어 그 국토애가 응집된 공간만큼이라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깨인 개발이기를 요망한다. 선조가 남긴 진경산수화 속 우리의 이상향이 바로 이 땅에, 우리 곁에 있음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개발이 중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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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대 곽희(郭熙)의 <조춘도(早春圖)>를 짚을 필요 없이, 산수화 속 인간은 다리를 건너 신비의 자연을 향해 떠나는 여객으로 묘사된다. 속진을 벗어나 산수자연의 이상향을 향하는 여정 정도는 남겨 놓아야 하지 않을까. 조선시대 진경산수화는 단순한 풍경의 기록이 아닌, 국토가 지닌 아름다움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한 '국토애'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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