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진실을 찾는 진주시민들의 모임' 인터뷰
진주 '세진모' 2015년 6월 첫 집회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
"세월호 같은 비극 다신 안돼…매년 4월 16일 기억할 것"

진주에는 '세진모'가 있다. '세월호 진실을 찾는 진주시민들의 모임'의 준말이다. 세월호 참사 일 년 후에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시민활동은 거의 중단되었다.

세월호는 이제 끝났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진주에서는 여전히 세진모가 활동하고 있다. 세진모 활동가 최세현 씨와 박민정 씨를 <단디뉴스>가 만났다.

◇세진모 어떻게 시작되었나

박 :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진주에서 문화예술인 몇 분이 주축이 되어 비정기적으로 경상대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있었다. 근데 (촛불집회를) 아는 사람만 알았다. 진주에서도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이정옥 씨(세진모 회원)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외국여행 갔다가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있었다. 그 분이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세월호 부모님 마음이 이해된다'면서 혼자 피케팅을 하셨다. 그걸 보고 몇 명이 모였다. 처음에는 4명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2015년 6월에 첫 집회를 했다.

최 : 세진모는 정치적 색깔을 가진 모임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야말로 시민 스스로 꾸미는 풀뿌리 모임이다.

박 : 처음 회의에서 우리는 단체, 조직 그런 개념이 아니라 순수하게 시민들이 모여서 한 거니 시민모임으로 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진실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월호 진실 찾기 진주시민모임'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가

최 : 세진모 구성원 면면을 보면 참 재밌다. 그냥 평범한 엄마, 아빠, 일반 청년들이 회원이다. 오로지 세월호 때문에 모인 것이다.

박 : 세진모는 세월호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아니다. 대표나 위원장과 같은 직함도 없다. 그냥 세진모 가족, 식구 이렇게 말한다. 어디서 지시받고, 하달받고 쟁취하려는 모임 역시 아니다. 정치적인 고려는 더더욱 없다. 한 달에 두 번 회의 과정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의견을 모은다. 세진모만의 방식으로 세진모만의 생각으로 말이다.

최 : 시민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인터넷에 일정을 올리면 백 명 넘게 꾸준히 와 주셨다.

박 : 젊은 학생들 특히 중고등학생들 반응이 좋았다. 정권이 바뀌고 차이를 많이 느꼈다. 가방에 다는 세월호 리본도 많이 받아가고, 휴대전화에 세월호 스티커도 붙여 갔다. 어르신들도 손주 준다고 받아 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지나가면서 박수 쳐 주시고, 영상 틀어 놓으면 길가다 영상 보겠다고 서 계신 분들 보면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우리가 그동안 했던 게 이런 식으로 표가 나는가. 응원을 많이 해주시니 보람이 생겼다.

◇세진모 활동하면서 언제 가장 뿌듯했나

최 : 세월호 7시간이 탄핵의 고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퇴진까지 이어진 건 당연했고 우리 활동에 보람을 느꼈다. 세진모는 퇴진 집회도 함께 해 왔다. 우리가 시작했던 촛불이 이어졌다. 세월호 집회 촛불이 결국은 박근혜 퇴진 촛불과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박 : 세월호가 인양되고 나서 다른 지역에서는 세진모와 같은 활동은 거의 멈추었다. 안산 유가족 분들도 진주처럼 꾸준히 세월호를 기억해 주는 지역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게 잊힐 문제는 아니니까 계속하는 것이다.

박 : 유가족 분들이 진주에 여러 번 오셨다. 만나면 눈물바다였다. 세월호 유가족들께서 늘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힘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거기 분들 애쓰시는 거에 비하면 우리의 활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들 아픔을 공감하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산이나 세월호가족협의회에는 세진모가 나름 유명해졌다고 하더라(웃음).

◇고맙거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최 : 세진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온 고등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또 진주 박사모 지회장 하셨던 분의 시민발언도 기억에 남는다. 박근혜 지지를 후회한다고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 정말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하셨다. 진주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빌려서 출연료 한 푼 받지 않고 공연해 주신 많은 문화예술인에게도 감사드린다.

박 : 세진모 사람들에게 고맙다. 유가족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세진모 사람들 애를 많이 쓰셨다. 세진모 회원은 대부분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이다. 다음 날 집회를 위해 일 마치고 각자 집에서 리본 수작업도 하시고, 어묵 꼬챙이를 꿰고, 영상 제작도 하고 그러신다. 시민께 나눠주는 리본, 가죽공예 배워서 만든 거다. 이렇게들 열심히 하신다.

◇앞으로 세진모 계획은

박 : 세월호 사건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는 게 제일 서운하다. 그 말 때문에 아직 끝내지 못하는 거 같다. 진주에서 계속 해야 하고 진주시민께 기억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형태로 남을 것인가 고민이 많다. 특별법은 통과되었지만 활동과 관련해서 시민들에게 알리는 방향, 이런 부분들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게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세진모 우리는 어떻게 언제까지 할 것인가 고민은 많지만 지금이 마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올가을 '더 외치다' 콘서트에 유가족 합창단을 모셨듯이 내년 2월에는 유가족 극단 '노란리본' 공연이 현장아트홀에서 열릴 계획이다. 제목은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이다. 2월 3일 토요일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다.

최 : 앞으로는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진주시민께서 정말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만약 세진모 활동이 멈추더라도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행사를 진주에서 매년 4월 16일 꼭 할 것이다. 우리가 다시 모이는 날 진주시민들께서도 우리와 함께 계셨으면 좋겠다. /단디뉴스

최세현
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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