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2017]연극·영화·문학
두동강 거창·잿더미 연극사
실망·안타까움 컸던 연극계
밀양·하동 '새 출발'로 반전
창작 열정 빛난 독립영화
지역성 일깨운 문학 '주목'
존폐 갈림길 서점 관심 절실

관람객 확보와 소극장 활성화가 늘 고민인 극단. 상업영화에 밀려 극장에서 관람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독립영화. 대형서점에 밀려 간판조차 찾기 힘들어진 동네서점. 지역 연극, 영화, 문학계는 저마다 어려움과 고충을 안고 올해도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무대와 스크린 불을 밝히고 새로운 콘텐츠를 채워 나갔다. 화마가 덮친 연극관은 다시 일어서기 위한 동력을 확보 중이며,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극단은 '새 출발'을 다짐했다. 지역 독립영화는 열악한 상황에도 꾸준히 제작돼 관객에게 다가섰다. 갈수록 설 자리가 줄어드는 동네서점은 골목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으면 이루지 못할 일들이다. 한마디로 '뚝심'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실망·안타까움·기대감 교차한 연극계 = 29년간 지역을 넘어 전국적 명성을 자랑하던 거창국제연극제가 두 동강 났다. 거창군과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의 갈등 탓이다. 지난 8월, 거창문화재단과 진흥회는 같은 시기에 명칭과 장소만 다를 뿐 연극 위주의 유사한 행사를 동시에 개최했다. 축제 전통과 명성은 깨지고 이미지도 실추했다.

'하나의 연극제'를 염원하던 지역민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통합은 내년에도 기대하기 힘들 듯하다. 군은 올해 거창문화재단이 개최한 '거창한여름연극제'를 내년에는 '거창썸머페스티벌'로 명칭을 바꿔 연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역시 연극제를 따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거창에서 열린 두 연극제.

'연극박물관'과 같았던 마산연극관이 불에 타 지역 연극계가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2012년 6월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문을 연 곳이다. 지난 9월 발생한 화재는 마산연극 100년사를 삼켰다. 다행히 지역 연극인들이 나서서 되살리기로 뜻을 모았다. 오는 30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열리는 경남연극인대회에서 경남연극관 설립을 공론화하는 토론의 장이 열린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심기일전하며 흩어진 초심을 다지거나, 연극 불모지에 뿌리를 내려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극단이 있다.

밀양 극단 메들리는 올해 또 다른 시작을 향한 출발선에 섰다. 1967년 창단한 메들리는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 단체다. 50주년을 맞은 올해를 기점으로 세월의 풍파 속에 사그라졌던 창작 의욕과 열정을 살리고 연극 꽃을 피우기 위한 의지를 다졌다. 공연작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는 등 왕성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화재가 발생한 창원시 창동 극단 마산 가배소극장 사무실.

하동에서는 첫 극단이 탄생했다. 한국예총 하동지회와 하동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힘을 모아 '어울터'를 창단했다. 전문 연극인 중심이 아닌 다문화 이주여성과 귀농·귀촌 지역민 주축으로 운영된다. 거창에서도 최근 거창 극단이 만들어졌다. 역시 지역민 중심이다. 이들 극단은 연극을 통한 문화향유 증진과 문화 저변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 독립영화 제작 노력 '결실' = 경남에는 영화학과가 없다. 그만큼 인력, 장비 등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열악한 제작환경에 상업영화에 밀려 상대적 박탈감까지 더해진 상황에서도 지역 감독들은 작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올해는 그런 노력의 성과가 조금씩 빛을 발했다. 영화 제작에 힘을 실어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도 한몫했다. 최정민 감독의 장편영화 <앵커>는 올해 한국영상위원회에서 주관하는 2017 지역영화기획개발 및 제작지원사업 지원작으로 선정돼 국비 4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2015년 경남독립영화 지원작인 최 감독의 또 다른 장편영화 <프레스>는 영화예술진흥위원회 저예산 영화개봉 지원작으로도 선정돼 지난 11월 30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했다.

하동 극단 어울터 창단 공연 <비벼, 비벼!> 연습 모습.

김진남 감독의 장편영화 <판타스틱 휴가백서: 삼천포 가는 길>에 출연한 조수하는 2017오버컴 필름 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구자환 감독이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해원>은 서울독립영화제 특별 초청작으로 최초 상영됐다. 지난 9월 도교육청에서 시사회를 가진 바 있다.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해 지역민에게 다양성 영화 관람 기회를 제공한 자리도 꾸준히 마련됐다.

서부경남 독립영화 축제인 진주같은영화제를 비롯해, 10년 넘게 지역 예술의 힘을 보여 주고 있는 경남독립영화제는 올해도 다양한 주제를 통한 자유로운 시선과 표현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예술영화전용관인 창원 씨네아트 리좀과 진주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다양성 영화 상영회 역시 영화의 매력을 전파했다.

◇희비 엇갈린 동네서점 = 전국 규모를 자랑하던 창원시 마산합포구 헌책방 영록서점이 주인을 잃었다. 지난달 23일 박희찬 대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120여만 권 중고서적은 방치됐다. 책방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폐기될 처지다.

지역에서 헌책방 명맥을 이어오던 영록서점이 존폐 갈림길에 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민들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현재 영록서점은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불투명하다.

반면에 올겨울 품을 넓힌 시골 책방과 쇠락한 골목에서 책·문학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 놓는 공간이 생겨 눈길을 끌었다.

주인을 잃은 영록서점 내부.

통영 봉수골 동네 책방 '봄날의 책방'이 지난 11월 다시 문을 열었다.

'봄날의 책방'을 이어 통영 서피랑에 문학의 향기를 꽃피운 책방이 새로 생겼다.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 주요 배경인 하동집이 모태인 '잊음'에 둥지를 틀었다.

책을 읽는 시간과 사람을 잇는다 하여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라고 이름 붙였다. 동네 책방은 쇠락한 골목에 온기를 불어 넣고 이웃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문화사랑방 노릇을 할 예정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 책방 모습.

◇지역성 내세운 문학 = 올해 문학은 지역성에 기반한 자연과 환경, 노동을 노래한 시인들 작품이 눈에 띄었다. 창녕에서 나고 자란 손남숙 시인은 우포늪에 관한 생태 에세이 <우포늪, 걸어서>를 펴내 새에 대한 애정을 녹였다. 복잡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늪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창원 표성배 시인은 희망퇴직으로 고통을 받는 동료,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 표제 또한 <미안하다>다. 시, 산문으로 일기처럼 남긴 글을 엮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