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리콜(Recall) 지방선거] (1) 사라진 정치 다양성
보수정당 지방정치 장악, 2010년 이후 '반전'물꼬
민주개혁연대 등 돋보여, 선거구 획정 관련 논의 주목
1~2개 정당 의석 과점 막고 당 득표율 연동한 방향 필요

'리콜'(Recall)은 명사로 기억·기억력·복귀령·복귀 요청·회수, 동사로는 기억해내다·소환하다·회수하다·도로 불러들이다 등 의미로 쓰입니다. 정치·법률적으로는 '주민소환 제도'를 뜻하기도 합니다. 지방분권의 꽃은 지방선거이지요. 지방자치 28년, 지방분권은 아직 미흡하지만 지방선거를 통한 지방자치 실현에는 여러 순기능이 있었습니다. 한데 지난 2014년 도내 지방선거 결과는 그동안 지방정치가 보여 온 여러 순기능을 제약했습니다. 지역주의 굴레 속에 도지사, 광역의회 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회 의원 일당 쏠림이 공고화된 것이지요. 이를 등에 업은 도지사는 중앙 정치로의 회귀만 노렸고, 도의원들은 이에 부역했습니다.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는 부패의 늪에 허덕였지요. 이는 지방자치가 그동안 이룩해 온 정치 다양성 확보, 생활정치 활성화 등 여러 성과의 후퇴를 낳았습니다. 부패 심화는 심각한 역기능이었지요. 6·13 지방선거에 'Recall'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공고화한 일당 쏠림 = 지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4년은 부족하나마 경남 정치 다양성에 꽃이 핀 시기였다.

지난 1960년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된 지방선거가 1987년 헌법에 지방자치조항 명시를 계기로 31년 만인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부활했으나, 경남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공고화한 지역주의 속에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이 지방 정치마저 장악해왔다. 그 뒤 20년 동안 이어진 보수 일당 독점 체제는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정권심판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반전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정권에 불리한 여론 속 민주·진보진영이 지역별 전략적 단일화로 공동전선을 펴 도내에서도 야권·무소속 약진이 두드러졌다.

2013년 도의회 민주개혁연대가 본회의장에서 진주의료원과 관련한 날치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경남에서도 민주당계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도지사로 당선됐고, 도의원 전체 54명 중 민주·진보진영과 무소속 도의원이 16명으로 3분의 1을 차지한 것이다. 기초의원도 전체 259명 중 한나라당 소속은 158명에 그쳤을 정도로 지역 민심이 완전히 바뀌었다. 반면 4년 뒤인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도민은 야권에 철저하게 등을 돌린다. 특히 통합진보당 사태 여파로 도내 제2당 역할을 하던 진보정당 인사들이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 결과 교육감과 비례대표를 뺀 선출직 294명 중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이 213명이나 됐다. 광역·기초 비례대표까지 더하면 334명 중 238명에 달했다. 광역·기초자치단체장 19명 중 18명이 새누리당 또는 이 계열 무소속이었다. 도의회는 의원 55명 중 50명이 새누리당 소속이었다. 기초의원도 전체 260명 중 173명이 새누리당 소속으로 채워졌다. 기초의회 중 야당 소속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지역도 의령·남해·산청·함양·합천 등 5곳이나 나왔다.

◇다양한 도민 목소리 묻혀 = 지난 2010년 지방선거로 한나라당 일당 독점 속에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공존하기 어려웠던 경남에도 활발하면서도 생산적인 정치 논의의 장이 열렸다.

경남도의회 내에는 "정당과 이념을 뛰어넘어 올바른 도의회를 구현하고 한나라당 독주에 맞서 도정과 도의회를 도민 품으로 돌려놓겠다"는 취지로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이 연합해 원내 교섭단체인 '민주개혁연대'를 구성했다. 이들은 △4대 강 사업 반대 △친환경 무상급식 실현 △정상적인 공교육 체계 확립 △영유아 무상교육 등 서민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확충 △전통시장 활성화와 중소상공인 경쟁력 강화 △노동자·농어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 대안 마련과 시스템 구축 등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수 일당 독점 체제 내에서는 입에 꺼내기도 어려운 개혁적 주제들이 많았다. 반대로 김두관 도정에서 구현해야 할 개혁적 과제이기도 했다.

민주·진보진영은 이같이 김두관 도정에 대체로 힘을 싣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현안 관련 부적절한 대응에는 한나라당과 함께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도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른 다양한 정파가 모이다 보니 집행부와도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화와 타협에 필요한 다종다양한 회의체계가 여럿 가동되면서 도의회에는 언제나 생동감이 넘쳤다.

의원들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두고 서로 목소리를 크게 높이다가도, 도정 견제에 톡톡히 역할을 했다고 판단되는 동료 의원을 향해서는 정파를 떠나 모두 함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모습도 보였다.

이 가운데 도민 민심을 얻으려는 정당 간 경쟁도 치열했다. 민주노동당은 '현장 중심 생활 정치'를 표방하며 당 소속 도·시의원들이 노동자, 농민, 현안 발생 지역을 직접 방문해 당사자 고충을 듣는 생활현장방문 활동을 정기적으로 펼쳤다. 진보신당은 현안별 전문성을 극대화해 경남도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역점을 뒀다. 대표적인 게 김해연 도의원의 불합리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바로잡기 등 거가대교 관련 지속적인 문제제기다. 아울러 도민 이동 편의 확보와 가계 부담 경감에 도움이 될 창원터널 통행료 폐지도 시·도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서 관철시켰다.

이 같은 모습은 비단 도의회뿐만 아니라 각 시·군의회에서도 활발하게 보였다.

이렇듯 민의의 용광로로 끓어 넘치던 경남 정치 모습은 그러나 지난 2014년 지방선거로 자취를 감춘다.

2015년 친환경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가 도의회 앞에서 펼친 선전전.

홍준표 전 도지사 체제하에 보수 일당 독점 체계가 더욱 공고해진 탓이다. 도의회에서는 더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중도의 정치가 기를 펴지 못했다. 특히 진주의료원 폐업, 무상급식 중단 등 도민을 대립과 갈등으로 몰아넣은 정치 현안을 두고 도의회는 과정상 견제와 균형을 부르짖으면서도 결과는 항상 홍 전 지사 손을 들어줬다.

건강한 토론은 사라지고 사람 수를 믿고 홍 전 지사 방침에 반대하는 소수 정당 의원을 비난하는 일이 난무했다. 도민의 다양한 민의를 받아 안는 게 도의회 역할임에도 홍 전 지사의 일방독주식 도정을 걱정하는 시민사회단체 목소리를 대부분 배척했다. 이 탓에 도의회는 도청을 감싸고, 도청을 대신해 시민사회와 싸우는 기관으로 비쳤다.

◇선거구 획정 주목 = 지난 4년 동안 도민은 다양성이 사라진 지방정치 현실이 가져다준 폐해를 목도했다. 보수-중도-진보를 망라한 정치의 다양성이 회복돼야 건전한 도민의 바른 목소리가 도정에 다수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느끼는 계기였다. 이 같은 현실을 바꾸려면 도민 의식 변화를 꾀해야 하는데 지역주의가 굳건한 경남에서 단시간에 이를 이루기 쉽지 않다.

다만 제도적 문제로 말미암은 민의 수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도내 제 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벌이는 '선거제도 개혁', 이 중 '선거구 획정 제도 개선' 논의가 그것이다. 현재 심각한 수준의 지방의회 일당 독점 문제는 '정당득표율과 의석 비율 불비례성'이 극심한 데서 비롯된다.

2010년 한나라당 의장단 독식을 규탄하는 민주개혁연대 등의 대시민 홍보전.

조유묵 정치개혁 경남행동 공동대표는 "한국 광역의회 선거제도는 표심을 왜곡하는 불비례성이 세계 최악이고, 기초의회도 1~2개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의회에서 정치세력 간 경쟁이 상실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타개하려면 광역의회 선거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맞게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해 득표율과 실제 의석 수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기초의회 선거는 3~5인 선거구 조정이 필요하다. 기초의회에는 2006년부터 중선거구제가 도입돼 한 선거구에서 의원 2~4명을 선출할 수 있지만 2인 선거구로 '쪼개기'하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조 공동대표는 "기초의회도 전체 선거구의 59.2%가 2인 선거구로 돼 있어 두 거대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거나 과점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현재 중선거구제로 운영 중인 기초의회 의원 선거도 표의 등가성을 높이고 비례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개편 방향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전면 비례대표제나 지역구가 있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되 2인 선거구 분할을 금지하고, 지역구와 비례 비율은 2 대 1로 규정함과 동시에 최소 의회 의석 규모는 현행 7석이 아닌 9석으로 증가를 전제로 한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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