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분권이다]지역 창업펀드 확대·벤처캐피털 신설
정부, 모태펀드 조성 때 지자체에 최대 60% 투자
경남 전무해 매칭도 없어…도 '채무 제로'정책 산물
부산 1981억…5.7배 차이
"제품 개발 뒤 생산 단계
투자자 찾기 별따기 수준"
창업자 수도권행 부추겨

새해 들어 경제전문가들은 올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2000달러로 3만 달러 시대를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경제연구원과 한 경제지가 전문가 대상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고비용·저효율 구조 개선과 성장 잠재력 확대를 위한 가장 시급한 산업 혁신 과제로 '주력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고부가가치화'를, 다음으로 '창업 벤처 활성화'를 선택했다. 일부 전문가는 '제2 벤처 붐 조성'을 강조했다.

경남 창업생태계는 제2 벤처(창업) 붐 조성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을까? 안타깝게도 도내 대부분 창업기업은 초기를 지나 창업 중기부터 경남에서 창업하는 것은 차별을 각오한 행위라고 입을 모은다. 왜일까?

경남에는 창업기업으로서는 젖줄과도 같은 지역 창업펀드 조성이 미미하고, 지역 벤처 캐피털(이하 VC) 운용사도 없다. 현재 경남창업생태계는 팥소 없는 붕어빵 신세다.

◇건전한 창업 생태계란 = 창업·벤처기업 성장 기반 조성과 확대는 우리 경제가 선진국 산업기술을 빨리 따라가던 추격경제(Fast follower)에서 선도경제(First mover)로 전환하려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건전한 창업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이 용역 의뢰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수행한 연구용역보고서 <창업생태계 현황 및 보완 과제 연구>(2014년 9월 발간)에 따르면 '건전한 창업생태계'란 '창업투자→기업성장→자금회수→ 재투자(재창업)'의 선순환 구성이다. 이 연구보고서에서는 이런 선순환 구조를 갖추려면 창업, 벤처투자자금, 자금 회수시장 관련 유기적인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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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금과 연계한 '건전한 창업생태계' 개념을 더 살펴보자. 창업가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술을 갖고 창업에 뛰어들면 인큐베이팅(보육) 기관에서 일정 기간 보육을 거쳐 창업가 개인과 가족 자산, 소규모 엔젤투자로 적절한 수준의 초기 자금을 확보한다.

시제품 생산 전후로 기술금융(기술신용보증기금 등)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인 생산을 앞두고는 VC 등으로부터 규모 있는 투자를 유치해 1차 사업화에 성공한다. 여기에 창업 초기에서 중기까지 각종 지원을 해주는 '액셀레이팅'이 곁들여지면 더 좋다. 그렇지만 경남에는 중기부 액셀레이팅 프로그램이 없다. 이렇게 1차 사업화에 성공하면서 기업공개(IPO)로 우선 코넥스 시장에 진입해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투자를 받아 사업 확장을 꾀해 2차 기업 공개로 코스닥 시장에 진입하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이런 순환 구조가 '건전한 창업생태계'다. 이런 생태계 조성은 VC 운용사에도 투자 자금 회수 안정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업력 5∼10년 성장 초기단계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제공 시장 역할을 하고자 2013년 7월 개설한 코넥스 시장은 여전히 기대만큼 활성화하지 않았고, M&A(인수합병)를 통한 벤처 투자자금 회수 비중은 2013년 겨우 0.3%다. 미국이 M&A를 통한 자금회수 비중이 82.1%에 이르고, 이스라엘도 주로 글로벌 기업의 M&A로 자금 회수가 많이 이뤄진다. 구글 등과 달리 한국 대기업은 벤처기업 인수에 여전히 인색하다.

코넥스와 M&A 시장 비활성화는 국내 VC 운용사조차 기업 미래 가치보다 안정성과 회수 가능성 중심으로만 투자하는 폐단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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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경남에서 창업하지 않았을 텐데…" = 도내 창업기업은 국내 창업 생태계의 이런 불완전함에다가 상대적으로 낙후한 경남 창업시스템이라는 이중고를 함께 겪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휴대용 휴대전화 충전장치와 소형 ESS를 개발·제작하는 도내 한 창업기업 대표는 "2016년 중국 유통업체와 일정 규모 이상의 본계약을 체결했다. 본격적인 생산 체제를 구축하려니 자금이 막혀 그해 하반기부터 지난해까지 10곳이 넘는 서울·수도권 VC 운용사를 방문하고 투자유치설명회에도 많이 다녔지만 헛수고였다"며 "엔젤투자는 5000만∼1억 원 정도라 제조업 창업기업에는 투자 규모가 안 맞고 VC 운용사는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 기업에만 투자한다. 한 운용사에서는 '본사를 수도권으로 옮겨라. 그러면 바로 투자해주겠다'고 했다. 기술력과 관계없이 지역 창업기업은 이삼류 취급 받는 게 현실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역 창업기업 중심으로 투자하는 창업펀드와 VC 운용사가 있었다면 작년의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진한 아쉬움을 전했다.

도내 창업기업들이 지난해 11월 29일 경남TP 1층 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경남TP 기술사업화촉진 공동IR 겸 투자설명회'에 참석해 투자 유치 활동을 하고 있다. /이시우 기자

◇"창업펀드 확충, 지역 VC 설립 미룰 일 아냐" = 앞선 업체 대표 호소는 구체적인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경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에 따르면 도내 8개 엔젤투자클럽이 자체 혹은 중소벤처기업부 엔젤투자펀드와 대응투자해 경남 창업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작년 7월까지 37억 1000만 원이었다.

투자액 중 중기부가 대응 투자한 엔젤투자펀드는 23억 8000만 원이었다. 도내 창업펀드는 지금껏 투자된 엔젤투자액에다가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설립 시 조성한 경남창조경제혁신펀드 310억 원(정부 100억·경남도 100억·두산그룹 100억·자금운용사 10억 원 출자)이 전부다. 즉 경남 창업펀드 규모는 약 347억 원이다.

인근 부산시는 올해 1월 초 현재 13개 창업펀드에 펀드 규모는 1981억 원에 이른다. 펀드 규모만 5.7배다. 여기에는 부산지역 엔젤투자클럽별 자체 투자는 제외된다.

펀드 운용도 창업 초기와 사업화 단계로 나눠 한다. 창업 초기 단계 펀드 규모는 7개 652억 원, 사업화 단계 펀드는 6개 1329억 원이다. 케이브릿지인베스트먼트 등 지역 VC 운용사도 있으며, 부산시는 이런 펀드 운용과 지역 창업생태계 조성, 창업 기업 지원을 전담하는 '창업지원과'를 두고 있다.

경남도는 별도 과가 없는 데다가 담당부서도 일자리창출과에서 연구개발지원과로 들쑥날쑥하다. 지난해 중기부 모태펀드가 대응 투자한 지역 창업펀드 조성에 부산·울산(120억 원)·대구(100억 원)가 있었지만 경남은 없었다.

중기부 모태펀드는 지역에서 창업펀드 조성 시 전체 펀드 규모의 최대 60%까지 대응 투자해준다. 하지만, 이런 좋은 조건의 중기부 모태펀드 매칭 경남창업펀드는 '0'원이다. 이 '0'은 홍준표 도정 시절 '채무 제로'로 대표되는 최근 수년간 경남도 경제정책의 속살이다.

지역 경제 관련 유관기관들조차 유의미한 규모의 지역 창업펀드 조성과 자체 VC 운용사 설립(혹은 도입)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상기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센터 설립 뒤 조성한 310억 원 펀드도 VC 운용사가 안정적인 운용을 원해 상대적으로 모험적인 투자는 꺼리는 편"이라며 "지역 창업펀드가 더 조성되고, 지역 스타트 업 기업에 투자할 자체 VC 운용사를 설립하면 도내 창업기업에는 훨씬 든든할 것"이라며 지역 창업펀드 확충과 VC 설립을 적극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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