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집사람에게 젊을 때는 이유 아닌 핑계로, 나이 들어선 손자 키우는 빌미로 옳은 여행 한번 가 본 적이 없어 늘 맘 한구석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올해는 못해 본 여행을 집사람과 같이 단 며칠이라도 가야겠다고 맘속 다짐을 하며 새 달력에서 연휴를 뒤적거려 보았다. 지난해는 공휴·연휴를 합쳐 119일, 즉 한 해의 3분의 1이 휴일이었다.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황금연휴는 없지만 휴일 수는 작년과 같았다. 지난해 시월의 황금연휴 같은 경우는 20년 내에는 없다고 한다. 매스컴에서는 매일같이 인천공항 출항객이 신기록을 경신했다는 등 떠들어 대자 집사람 하는 말이, 카드 긁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행 융자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데 우리는 왜 못 가느냐고 칭얼대도 꽉 막힌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여행을 가지 못한 대부분 사람은 나와 같이 황금연휴 방송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영부영 지루한 연휴였을 것이다. 문제는 예부터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의 패턴이 습관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많은 갈등을 가져온다. 9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모처럼의 연휴를 즐기고 월요병이라고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유행을 했는데, 요즘은 연휴가 많아 월요일에 전 가족 구성원들이 피곤하고 무기력, 우울함이 나타나는 일종의 부정적 심리상태인 '먼데이 블루스'라는 신조어의 휴가병까지 생겼다.

요즘은 공무원들의 법정 연가를 꼭 써야 한다는 선심정책(?)의 덕택으로 아들·며느리에게 같이 연가를 얻도록 하여 복잡한 연말이 오기 전에 손자를 맡기고 3박5일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모처럼 가는 해외여행인데 비행기에서 오갈 때 이틀 밤을 자야 한다는데 시큰둥하더니, 준비물을 챙기는데 외국에 가면 술값이 비싸기 때문에 반주용 소주팩 10개만 넣자는데 화근이 되어 여행이 반쯤 취소되었다가 겨우 얽어매어 가게 되었다.

몇 시간을 버스 타고 이동하는 빡빡한 일정 가운데 성치 않은 몸으로 일행들을 따라다니는데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는 몰랐는데 모든 것이 낯선 외국 땅에 와보니 집사람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나이 많으면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물을 수시로 챙겨 주는가 하면, 식사 때가 되면 남편 몰래 가져온 반주를 따라주는 모습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귀국길에 비행기에서 몇 년 만에 집사람의 손을 잡아 보았더니, 비단결같이 부드러웠던 손결이 삼베 홑이불같이 까칠까칠해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 그동안의 무관심에 죄스러워 손깍지를 해주었더니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오갈 때 이틀이나 비행기에서 잠을 설치고 빽빽한 일정 때문에 여행 후유증으로 생긴 처음 들어보는 '먼데이 블루스'라는 일명 휴가병을 앓게 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에 혈압까지 있다고 해 걱정이 앞섰다. 의사의 말이 '병의 원인은 다른 내적인 원인보다도 심적인 요인이 많다'면서 약간은 남편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무리한 여행은 자제하고 사전에 계획을 세워서 외국이 아닌 가까운 곳이라도 같이 자주 나들이를 하여 허파에(?) 바람을 넣어 주어야 된다'는 의사의 부연에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허만복.jpg

이젠 우리도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됐고 삶의 질을 되짚어 볼 때가 됐다. 토·일요일 연휴가 한 달에 서너 차례 있고 주50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 시간적 여유가 많아 '먼데이 블루스' 같은 생체 리듬이 깨지는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럴 때일수록 일상의 패턴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생활 습관이 필요하고 연식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평소에 가까운 곳에서의 워밍업이 필요한 것 같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