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감액 47억 초유 상황 '책임 떠넘기기'
지역·군민 위하는 게 뭔지 먼저 생각을

새해가 시작됐지만 관가를 중심으로 거창군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군의회가 지난해 말 예산심의에서 47억 원을 삭감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1995년 민선 출범 이후 가장 큰 금액이어서 지역사회가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집행부와 의회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이번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집행부가 올 한 해 계획한 각종 사업이 일단 벽에 부딪혔다. 특히 소규모 재해위험과 불볕더위에 대비한 안전분야 예산 5억 5000만 원, 농업용수 확보와 소하천 유지관리 예산 4억 원이 삭감되어 재해예방과 농업기반 확충에서 차질을 빚게 됐다.

도시계획도로 신설을 위한 예산 15억 원이 삭감되어 소방도로 확충을 늦출 수밖에 없게 되었고 해묵은 숙제였던 읍내 김천리 대형마트 주변 교통문제 해결도 난항이 예고된다. 농업분야에서도 거창 한돈 사료첨가제 지원, 한우 인공수정 지원, 원예특작과 과수 저온저장고 지원을 위해 편성한 5억 7000만 원이 삭감돼 농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도 발목이 잡혔다.

여름 연극축제를 '썸머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꾸어 이어가려 했으나 8억 원에 가까운 예산 전액이 삭감되면서 이 또한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집행부에서는 정당 간 힘겨루기이자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둔 정략적인 예산 심의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의회는 대부분 자유한국당 소속인 반면 군수는 더불어민주당 당적이라는 점에서 이유 있는 항변으로 들리기도 한다.

양동인 군수는 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가 끝난 후 관련 실과장 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군수가 당적이 달라 이런 대규모 삭감 사태를 불러온 것 같다. 부서장들에게 부담을 줘서 미안하다"라는 말로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군의회는 예산삭감에 당적이 있을 수 없다며 집행부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우선 도시계획도로 편입부지 보상은 사업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풀 예산 성격이며, 소규모 재해위험지역 정비는 지난해 예산 5억 원으로도 부족함이 없고, 대형마트 주변 도시계획도로 사업은 시급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한우 인공수정지원사업은 지난해에도 삭감된 예산으로 재추진 사유가 명확하지 않으며, 거창한 여름연극제 예산은 연극제가 아닌 썸머 페스티벌로 축제를 한다고 해서 당연히 삭감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한편, 그동안 집행부가 거창구치소 이전을 비롯한 지역현안 사업에서 의회와 갈등을 빚는가 하면 주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의회를 다소 홀대해 쌓인 감정들이 예산 삭감을 통해 불거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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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집행부와 의회는 수레의 두 바퀴에 비유된다. 어느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같이 넘어진다. 의회는 집행부의 입장을 헤아리고 집행부는 의회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엄중히 인식하면서 진정으로 지역과 군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집행부와 군의회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좀 더 큰 생각을 하며 갈등 요소들을 슬기롭게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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