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기슭 따뜻함 품은 시인의 집, 바쁜 도시 생활 돌아보게 해
농부로서 땀 흘리며 느낀 마음 글로 옮겨…공동체·인문학교 운영
산에 뿌리 내린 생명들이 잠시 성장을 멈춘 겨울. 차디찬 기운을 머금은 비가 산기슭 마을 어귀를 찬찬히 적신다. 한 바탕 초록 물결이 지나간 들판은 황색 옷으로 갈아입고 색 바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잎을 다 떨군 채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나무는 묵묵히 삭풍을 견딜 뿐이다. 옅은 햇살이 내려앉은 담장과 지붕, 마당에는 한낮에도 찬 공기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낯선 이의 발걸음 소리에 '워 워' 개 짖는 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마른 풀을 되새김질하던 누런 소가 두 눈을 끔뻑이며 '음메~' 울음소리를 길게 늘어놓는다. 적막한 시골 분위기를 정겹게 다독인다. 구불구불 이어진 고샅을 따라 느릿한 걸음을 옮기자 흙으로 지은 집 한 채가 마을 끝 풍경을 장식하고 있다. 어쩐지 밥 짓는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를 것 같은 푸근한 느낌이다.
"산에 가서 땔감을 하여 구들방에 군불을 때서 삽니다. 장작 타고 남은 재는 거름으로 쓰죠. 나무를 숯으로 만들 때 발생하는 목초액을 받아서 농약 대신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농사지으며 글을 쓰는 '농부시인'으로 잘 알려진 서정홍(61) 시인의 집안은 뜨끈한 공기가 감돈다. 열일곱 평 남짓한 공간은 황량한 겨울 풍경마저 아늑하게 녹인다.
합천 황매산 기슭에 자리 잡은 가회면 나무실마을은 곳곳에 빈집이 많다. 열네다섯 가구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홀로 남은 어르신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
흙냄새를 찾아 2005년 산골 마을에 들어온 서 시인은 청년회장을 자처하며 산골 이웃과 함께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다. 논밭에서 작물을 가꾸며 도시에서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삶을 가꾼다.
될 수 있으면 농기계를 쓰지 않는다는 서 시인은 괭이와 호미로 농사를 짓고 있다. 자연을 괴롭히는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 따위는 사용하지 않는다. 수세식 변소 대신 생태 뒷간을 지어 대소변을 거름으로 쓴다.
서 시인은 가난하고 척박한 땅을 일구고 난 후에야 전에는 몰랐던 농부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꼭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애써 지은 곡식을 밥상 위에 내놓으면서 생명을 보존하는 첫 번째 일을 하는 이가 농부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농부가 없다면 세상 사람이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이랑을 만들고 풀을 뽑고 벌레를 잡으면서 흘린 깊고 그윽한 땀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그는 풍족하지 않지만 자연에서 소박한 삶을 일구고 있다.
서 시인이 그동안 펴낸 산문집 <부끄럽지 않은 밥상>, 시집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동시집 <우리 집 밥상> <닿지 않는 손>, 도감 <농부가 심은 희망 씨앗> 등은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의 소중함,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마움 등을 그렸다.
'밥 한숟가락/목으로 넘기지 못하고/사흘 밤낮을/꼼짝 못하고 끙끙 앓고는/그제야 알았습니다./밥 한숟가락에 기대어/여태/살아왔다는 것을.'('밥 한숟가락에 기대어' 전문)
'이랑을 만들고/흙을 만지며/씨를 뿌릴 때/나는 저절로 착해진다.'('내가 가장 착해질 때' 전문)
농부의 마음으로 돈과 권력, 명예 따위에 기대어 사는 세태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운다. 자연의 이치에 맞게 조화를 이루며 건강한 삶을 살 것을 은연중에 담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고 믿는 서 시인은 농부이기 이전 노동자의 삶을 먼저 살았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에서 태어난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으로 향한다. 뒤늦게 중학교에 입학해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기를 10여 년. 혹독한 노동환경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자본가들이 시키는 대로 죄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화가 쌓이기 시작했다.
서 시인은 오래 묵은 분노와 울분을 글로 토해냈다. 가난한 노동자에게 글은 돈이 들지 않는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가슴에 품은 말이 쌓이고 쌓여서 서 시인은 1995년 첫 시집 <58년 개띠>를 펴냈다. 창원공단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삶의 기록이다.
'58년 개띠 해/오월 오일에 태어났다, 나는/ 양력으로는 어린이날 음력으로는 단옷날/ 마을 어르신들 너는 좋은 날 태어났으니/ 잘 살 거라고 출세할 거라고 했다/(중략)/ 어느 누구한테서도/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바가지 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58년 개띠' 전문)
노동자로 살아온 지난한 삶을 노래한 시는 올해 황금 개해를 맞아 다시 한 번 주목 받고 있다.
한때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했던 그가 농부로서 삶을 시작한 연유는 '부끄러워서'다. 제 손으로 농사 한 번 짓지 않고서 농민운동을 하는 게 양심에 걸렸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찾았다. 이왕이면 맨 아랫집 닭 우는 소리가 맨 윗집까지 들리는 마을을 수소문했다. 그래야만 한 식구처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무실마을에서 농부로서 삶을 일구기 시작한 지 13년째. 종일 기계를 만지던 손에는 호미와 괭이가 쥐여지고 논밭을 홀로 헤맬 때가 많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를 들을 때면 혼자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경남생태귀농학교를 설립한 서 시인은 현재 농촌에서 '열매지기공동체'와 '청소년과 함께하는 담쟁이 인문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작은 공동체를 통해 마을을 돌보고 아이들 삶을 가꾸기 위함이다.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이 담긴 글이 아이들 교과서에 가득해야 된다는 서 시인.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시를 쓴다는 서 시인의 글에는 흙냄새, 땀 냄새,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