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동네슈퍼] (상) 벼랑끝으로 떠밀리는 상인들
'열심히 하면 된다' 믿음 속 11년째 가게 운영
골목상권 삼킨 SSM·우후죽순 생긴 편의점과 가격 싸움서 질 수밖에 없어

창원 의창구에서 11년째 슈퍼를 운영하는 유남구(가명·47) 씨.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을 이어가는 그에게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이며 잠시 말이 없었다.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그의 두 눈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불안이 그렁그렁 맺혔다.

남구 씨 하루는 보통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시장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채소와 과일, 생선, 해산물 등은 남구 씨가 매일 시장에서 직접 들여온다. 10년 가까이 거래한 시장 상인들과도 꽤 친하다. 가격이 다른 곳보다 저렴하지 않더라도 수년간 쌓은 정과 신뢰가 있기에 단골가게를 찾는 편이다.

보통 새벽시장 두 곳을 들른 후 오전 9시 전에 가게에 도착한다. 물건을 내리고 재고 등을 확인하면 점심때가 훌쩍 지나야 짬이 난다. 오후 2시께 시간이 나면 개인 업무를 보거나 운동,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창원 의창구 한 동네슈퍼 직원이 진열된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김해수 기자

오후 6시. 점장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남구 씨가 카운터를 이어받아 밤 12시까지 영업을 한다. 마감 후 집에 돌아가면 새벽 1시나 돼야 잠을 청할 수 있다.

물론 1년을 통틀어 쉬는 날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가 가족들로부터 원성을 사면서도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살아내는 바탕에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남구 씨는 2007년 지금 자리에 40평 남짓 슈퍼를 열었다.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자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시장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지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유통업을 접하게 됐다. "선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만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가족 생각하며 성실히 일하면 먹고살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업종을 정한 남구 씨는 아내와 일본에서 5년간 모은 돈을 종잣돈 삼고 빚을 보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소위 '대박'이 나진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장사를 하면서 일을 배웠으니까요. 4~5년 지나니 감이 오더라고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가게에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니 재미도 붙었습니다."

경험을 토대로 5년 전 대대적인 가게 리모델링을 했다. 직원도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6명이 됐다.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와 손발이 척척 맞는 이모들까지 두려울 것 없던 남구 씨였다. 몇몇 직원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자신의 가게 이름을 딴 지점까지 열었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 성실함만으로 싸움이 안 되는 상대가 나타났다. 골목까지 침투한 SSM(기업형슈퍼마켓)과 우후죽순 생겨난 편의점이다.

"가게 주변이 아랫길 윗길 할 것 없이 편의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SSM과는 가격에서 경쟁 자체가 안 됩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전단행사를 하고 있는데 이익률은 점점 떨어지죠."

1~2년 전부터는 퇴직금으로 지점을 내고 싶다는 문의도 단칼에 거절하고 있다. 남구 씨 자신조차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전 재산을 걸겠다는 이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가게 바로 옆에 하나로마트가 들어서면서 매출이 30%가량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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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정상적인 유통구조로는 도저히 들여올 수 없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싹쓸이합니다. 대기업에서 일반 슈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구입하니 제조사도 어쩔 수 없는 거죠. 부산에 120평 규모 SSM은 하루 매출이 3000만 원이라고 해요. 우리 가게에서 한 개 살 돈으로 두 개를 살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죠."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스타필드 창원점과 노브랜드 매장이다. 이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골목을 점거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정상적인 유통구조는 제조공장에서 만들어 본사로 제품이 가고, 대리점을 통해 슈퍼로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대리점과 거래를 하죠. 그런데 노브랜드는 이마트가 제조공장과 직거래를 하는 겁니다. 내용물은 똑같은데 포장지만 바꿨다고 납품가 자체가 확 낮아지거든요. 횡포죠."

남구 씨가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딸은 벌써 중학교 1학년이다. 가게를 시작한 후 얻은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가게 만큼이나 소중하게 키워 온 아이들이다.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적자가 나면 정든 직원들도 내보내고 아내와 둘이 가게를 봐야겠지요.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직장을 알아보든지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지요. 그런데 저……."

말끝을 흐리던 남구 씨가 힘을 줘 말한다. "10년 동안 배운 것도 많고, 우리 직원들도 있고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만 주면 정말 이길 자신 있거든요. 기회는 똑같이 줘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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