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여성이 바꿀 수 있다] (중) 여성 정치참여 성과와 한계
남성지배 정치 비민주적, 여성의원 복지·민생 부각
도의회 조례 제정도 앞서, 정당 공천부터 벅찬 현실
비례대표 의무할당제 등 제도적 뒷받침 유명무실

'모든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1960년대 여성주의(페미니즘) 운동을 상징한 이 구호는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개인적 경험들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여성이 겪는 차별이나 폭력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젠더 권력 아래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정책이나 중요한 결정은 개인 삶의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정책 의사결정 과정이 정치라고 할 때 여성은 오랫동안 정치 영역에서 소외돼왔다. 경상대 이혜숙 교수는 "성 불평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여성이 자신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성만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여성 정치참여 왜 중요한가 = 여성의 낮은 정치대표성은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한다. 인구의 반인 여성이 공적 이익 반영 과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는 기회 평등이나 다수결 원칙 등 민주주의 기본원리에도 맞지 않다. 또한 여성문제 의제와 정책적 해결을 막고, 여성을 비롯한 청년·장애인 등 정치적 소외집단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욕구를 차단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여성의 정치참여로 대표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2년 창원시의회 별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여성지방의원 네트워크 2012 하계 정기워크숍 모습. 당시 참가한 여성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그동안 남성지배 정치는 가부장적 정치구조와 권력 나눠먹기 식의 패거리 정치문화를 형성했다. 이로 말미암아 각종 정치적 부패와 비민주성·비윤리성 문제가 지적돼 왔다. 이런 정치 현실에서 부패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이 정치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방자치·생활정치시대에 여성의 정치참여는 더욱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방정치는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나 주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생활정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장이다. 당리당략에 좌우되는 정치판으로서가 아니라 민생을 해결하고 주민복지에 이바지하는 생활정치를 한다는 점에서 지방의회는 여성 참여 기회를 넓힐 수 있는 곳이다.

◇활발한 의정활동 = 지방의회에서 여성의원은 여전히 극소수지만, 의정활동만큼은 다수 남성의원 못지않게 활발하다. 이혜숙 교수가 경남도의회에 발의한 조례안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7·8·9대(2002~2014) 의회에서 제정안 비율이 여성의원 67건(78.8%)·남성의원 59건(36%)으로 여성의원 발의율이 월등히 높았다. 개정안 발의율은 여성 18건(21.2%)·남성 91건(55.5%)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제정안이 개정안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면, 여성의원들이 남성의원들보다 적극적인 입법활동을 하고 주민의 다양한 요구를 정책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조례안 처리 결과를 보더라도 수정가결률이 여성의원은 47.1%로 남성의원 18.3%보다 훨씬 높았다.

또 여성의원은 여성과 복지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여성 관련 분야 발의나 발언에서 여성의원뿐만 아니라 남성의원 참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면서 "이는 여성의원 증가가 남성의원의 성 인지적 의정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여성의원 수 증가가 여성정책에 대한 관심과 성 인지적 인식 확산에 이바지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대표성 확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예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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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3선 여성의원 찾기 드물어 = 여성의원들이 지방의회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의회 진출은 쉽지 않다. 우선 정치를 지망하는 여성후보자가 많지 않고, 정당 공천과정에서 걸림돌이 많아서다. 남성에 적합한 직업이라는 시선과 강제성 없는 여성할당제가 여성들의 정치 진입을 막고 있다.

지방정치에서 여성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 변화를 살펴보면, 2002년 광역의회 비례대표 여성 50% 의무할당제, 2005년 기초·광역의회 비례대표 여성 50% 의무할당제, 2010년 기초·광역의회 지역구 의원 최소 1인 이상 여성 의무 공천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여성계는 여성의 정치참여가 정치세력화하려면 전체 의원 가운데 여성비율이 30% 이상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성의원 대부분 비례·초선으로 정치를 시작하지만, 재선·3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전국적으로 여성의원 가운데 재선에 성공한 것은 10명 중 2명(19.8%)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의원을 거쳐 재선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지만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출마했다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현역 여성의원들은 경력단절 원인으로 지역구 여성공천비율이 낮고, 여성 정치인에 대한 편견, 열악한 자금력과 조직기반, 지역구 관리 어려움 순으로 꼽았다.

경남만 보더라도 역대 도의원 3선 의원이 없다. 현재 10대 의회 여성의원 8명 가운데 지역구 의원은 4명이고, 이 가운데 재선 3명·초선 1명이다. 9대 의회는 10명 가운데 재선 1명·초선 4명이고, 나머지 5명은 비례대표의원이다. 8대 의회는 6명 가운데 초선과 재선이 각 1명, 비례대표가 4명이었다. 기초의회에서는 3선 의원이 창원시의회 2명(정영주·이옥선)과 진주시의회 1명(강민아) 정도이다.

이경옥 창원여성살림공동체 대표는 "우리 지역에서 여성정치세력화 운동 역사는 20년이 넘었다. 일부 성과도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과 한계를 느낀다. 1세대 운동이 여성 후보를 발굴·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2세대 운동은 후보 전략뿐만 아니라 정치제도 개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할당제 실효성을 강화하려면 지역구 30% 이상 공천을 강제사항으로 하고, 지키지 않으면 국고보조금 전액 삭감·해당 지역구 후보 등록 불허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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