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개념&성격…'가상'보다 '암호'명칭 적확
전세계 1400여 종 존재 추정
비트코인 2009년 처음 등장
"블록체인 기술 중 하나일 뿐
과도한 규제 IT 활성화 막아"

가상화폐(암호화폐)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한국에서 지난 몇 개월 사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과열 양상을 보이던 가상화폐 시장은 최근 정부의 규제 움직임에 시세 폭락을 거듭하며 투자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상화폐규제반대>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2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참해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이같이 가상화폐 시장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개념을 이해하는 이는 드물다. 이에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어디에 쓰이는지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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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암호화폐! = 정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가 아닌 개인이나 기업이 발행하는 암호화된 디지털 화폐를 가상화폐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가상화폐(virtual crency)라고 부르지 않고 '암호화폐(크립토커런시·cryptocurrency)'라 칭한다. 국내에서 흔히 쓰이는 '가상화폐'라는 표현은 실체가 없다는 편견을 줘 혼란을 부추긴다. 따라서 암호화폐라는 표현이 더욱 적확하다고 할 수 있다.

전세계에 암호화폐는 14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600여 종이 통용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대시, 모네로 등 다양하다. 암호화폐 가운데 가장 먼저 생겨났으면서 대표적인 것이 '비트코인'이다. 아직까지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나가모토 사토시'라는 프로그래머가 2008년 '비트코인:P2P(Peer To Peer)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으로 설명했던 기술을 기반으로 2009년 1월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를 탄생시켰다.

비트코인을 생성하는 과정은 광산업에 빗대어 '채굴(mining)'이라고 한다. 채굴 과정은 이렇다. 수천, 수만의 비트코인 네트워크 사용자들은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이용해 일정 기간(10분)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푼다. 이 가운데 답을 찾은 이에게 그 동안 네트워크상에서 발생한 모든 거래 내역을 '블록(block)'으로 형성해 이전 블록에 연결(chain)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보상으로 비트코인이 주어진다. 이 같은 방식으로 채굴할 수 있는 비트코인은 2100만 개로 한정돼 있다. 개인이 비트코인을 채굴하기에 매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거래소를 통해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 국내에서는 빗썸, 코빗, 코인원 등 여러 곳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비트코인을 형상화한 이미지. 비트코인은 동전 형태의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암호화폐 어디에 쓰나 = 이렇게 만들어진 비트코인은 국가 간 송금에 매우 유리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는 ㄱ 씨가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들 ㄴ 군에게 용돈을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현재 해외송금 체계에서 ㄱ 씨가 보내는 용돈은 국내 송금은행→중개은행→미국 지급은행을 거쳐 ㄴ 군에게 도착한다. 이때 송금은행에서는 송금수수료(전신료 포함)를 떼고, 중개은행은 중개수수료를 받는다. 지급은행에서 돈을 뽑을 때에도 수수료가 발생한다. 보내는 돈 외에도 추가 비용이 부담스럽다. 게다가 이 과정은 2~3일 정도 소요된다.

그런데 암호화폐를 이용하면 이러한 과정과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P2P 거래 시스템이기 때문에 중개은행이 필요하지 않다. ㄱ 씨와 ㄴ 군이 각각 암호화폐 지갑을 생성해 ㄱ 씨의 지갑에서 ㄴ 군의 지갑으로 암호화폐를 전송하기만 하면 된다. 중개자가 없기 때문에 수수료가 없거나 매우 저렴하고, 걸리는 시간 역시 수 분 이내로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국제 무역·금융계의 지형을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상품을 구입할 때 암호화폐로 직접 결제도 가능하다. 전세계 비트코인 사용처를 지도에 표시해 안내해주는 코인맵(https://coinmap.org)에 따르면 18일 현재 1만 1589곳의 가게에서 비트코인을 받는다. 국내에는 158곳에서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록체인 = 비트코인의 기반이 된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block chain)'이다.

은행은 거래장부를 금고(또는 서버)에 보관해놓고, 고객의 입·출금 업무를 금고 속 거래장부와 확인한 뒤에 진행한다. 이러한 중앙집중형 시스템은 관리·운용하는 데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든다. 또한 중앙 서버가 해킹당한다면 경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중앙 서버 없이 거래하는 모든 사용자가 함께 거래장부를 관리한다. 각각의 사용자가 거래장부 금고인 셈이다. 비트코인 사용자는 똑같은 거래장부 사본을 각각 나눠 보관한다. 블록체인을 '공공 거래장부'라 일컫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10분에 한 번씩 모여 거래장부를 최신 상태로 갱신한다. 이 과정이 앞서 설명한 채굴이다. 이때 만들어지는 거래내역 덩어리를 '블록'이라 한다. 블록체인은 블록이 연결된 거래장부 전체를 가리킨다. 비트코인은 처음 만들어진 2009년 1월부터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거래내역을 블록체인 안에 쌓아두고 있다. 지금도 전세계 비트코인 사용자는 10분마다 블록체인을 연장하고 있다.

◇장부 조작 원천 차단 = 블록체인은 중앙 서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 유지 비용이 따로 들어가지 않는다.

또한 수많은 사용자 개개인의 거래장부 사본을 모두 찾아내 한 번에 해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보완이 완벽하다.

특히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유동희 경상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블록체인은 사용자 모두가 같은 사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변조를 하기 어렵다. 누가 특정 블록을 임의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맞지 않다면 금방 확인 가능하다. 블록체인에서는 사본 과반이 똑같아야만 정상 거래장부로 인정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임의 변경은 더욱 어려워진다"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해킹 사례는 암화화폐가 해킹된 것이 아니라 거래소가 해킹된 것이어서 암호화폐 자체와는 무관하다.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해킹된 적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적절한 규제는 필요 = 열풍을 넘어 광풍을 일으키던 암호화폐 시장에 정부는 '거래소 폐쇄' 등을 언급하며 강력한 규제 압박에 나섰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세는 급등락을 반복하며 요동치고 있다.

유 교수는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의 한 영역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사람들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과도기라고 본다. 지금은 '화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향후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의 서브 영역이 될 것이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스타트업이 많이 생기고 있다. 강력한 규제는 새로운 IT기술 활성화를 막게 될 수도 있다. 신중해야 한다"라고 전망했다.

유 교수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도 조언했다. 그는 "암호화폐는 주식과 유사하다. 주식을 투자할 때는 해당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분석해서 자산을 넣는다. 암호화폐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투기적 성격이 부각되면서 변동성이 심한데, 주식 투자를 하듯 암호화폐의 성격과 가능성 등을 잘 파악해서 신중히 투자하기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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