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 사고' 심리상담가 제때 개입 못한 점 지적
"생계 문제에 참여 어려워…초기 치료 지원체계 필요"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살고자 투쟁하는 노동자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지난 23일 저녁 창원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실에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당사자를 상담하고, 산재 지원 활동을 한 이들이 모였다. 이들은 '마음을 살피고 통해서 나아간다'는 뜻인 '심심통통' 심리상담 활동가 네트워크다. 지난해 초 구조조정으로 불안함을 겪는 노동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고민하면서 꾸려졌다.

지난해 10월 경남근로자건강센터가 삼성중 사고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상담사로 참여했다. 산재 지원 활동가, 임상·심리상담사인 이들은 사고를 겪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퇴직자 전화 설문조사, 치료가 필요한 노동자 심층 심리상담 등을 진행하면서 느낀 소회, 한계, 과제를 이야기했다.

이들은 공통으로 사고를 당한 노동자에게 상담을 하고 치료를 하는 개입 과정이 늦었음을 지적했다. 상담사들은 "전화를 하고 문자를 했을 때 이제 잊을 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있는데 왜 연락해서 힘들게 하느냐는 항의를 많이 받았다. 사고를 당하고 당장 개입이 필요할 때 상담, 치료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저녁 창원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실에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당사자를 상담하고, 산재 지원 활동을 한 이들이 모여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 과제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귀화 기자

이들이 만난 노동자들은 일상에서 여전히 사고 트라우마로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크레인 사고 이후 늘 위를 확인하게 되고, 큰 소리에 예민해져서 가족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정도다. 사고로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는 것이지만, 왜 그런 일을 겪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도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상담사들은 생계 탓에 일자리를 찾아 전국 각지로 흩어진 하청노동자에게 상담뿐만 아니라 산재 신청, 치료 과정은 높은 문턱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상담사는 "상담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여서 이미 서울, 경기, 강원 전국 곳곳에 계셨다. 다른 지역에서 상담을 받고자 해도 그곳에서 준비가 안 돼 있었다. 또, 산재 신청 과정에서 힘들어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 '(아프지 않고) 일할 만한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들으며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노동자뿐만 아니라 기업체, 고용노동부 등을 다 이해시키는 게 힘들었다고도 했다. 이들은 노동자가 재해를 입었을 때 의무적인 교육, 치료 등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가 사고를 겪은 후 교육, 치료를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현행 체제에서는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상담사는 "큰 사고가 나도 다들 쉬쉬한다. 고용 불안 때문에 말도 안 한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어도 없는 척하기도 한다. 의무적으로 사고를 겪은 노동자를 검사하고 교육을 받게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자의적으로 할지 말지여서는 안 된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자비로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서 치료를 할 사람이 적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고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상담사는 "사고 당사자들은 가족들조차 이제 몇 달이나 지났으면 괜찮아져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표현을 안 하려는 가장도 있다. 사고 이후 노동자가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고, 그래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부분을 알려야 한다. 학교폭력, 성폭력 등의 문제처럼, 산재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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