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표 예술영화전용관 10년간 주민과 함께했지만 재정난으로 문닫아
고별 영화 <라스트 씬> 상영객석 메운 관객 "아쉬움 커"
국도예술관 프로그래머 "잠시 공간과 이별할 뿐…"

지난 1월 31일 오후 8시, 부산시 남구에 위치한 국도예술관에서 조금 특별한 영화가 상영됐다. 상영 시작 1시간 전인 오후 7시, 국도예술관 입구는 영화 관람을 하려 모여든 인파로 붐볐다. 줄지어 선 사람들 사이로 '국도예술관을 지키는 관객시민연대 서명운동'에 서명을 받는 독립영화관지기들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오늘이 마지막이래", "마지막이라고? 왜?" 이날 국도예술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박배일 감독의 영화 <라스트 씬>이다. 영업 종료를 앞둔 국도예술관이 관객을 위해 준비한 고별 영화인 셈이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예술영화전용관은 2015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여파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2년간 끊기면서 재정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산시 남구에 위치한 지역 대표 예술영화전용관인 국도예술관도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 건물주로부터 임대계약 연장 불가 통보까지 받았다. 새 둥지를 찾지 못한 국도예술관은 결국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날은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10년간 관객을 맞이한 국도예술관이 마지막 관객을 맞는 날이었다.

국도예술관 내부는 영화 상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1~2평 남짓한 사무 공간에 영화 관련 소책자, 포스터가 빽빽했다. 더 이상 상영되지 않을 영화 소개 소책자를 괜스레 만지작거리는 김형욱(44·부산시 남구 대연동) 씨는 국도예술관의 마지막을 함께하러 왔다. "독립영화 보러 자주 왔었는데,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만 드네요."

부산 국도예술관 마지막 상영일 1월 31일에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모퉁이극장

오후 7시 30분, 영화관 입장이 시작된다. 17분 만에 빼곡히 채워진 객석, 스태프들은 표가 매진되었음을 알린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통로 계단이나 기둥에 몸을 기대는 관객도 더러 보인다. "평상시에 이렇게 많이 좀 와주시지." 영화 상영 전 국도예술관 정진아 프로그래머가 던진 농담이 무겁게 다가온다.

정 프로그래머가 말을 잇는다. "폐관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 공간과 이별할 뿐, 국도예술관은 그대로 존재할 것입니다. 다만 장소와 안녕을 고할 뿐입니다." 관객들이 갈채를 보낸다. 일정보다 조금 늦은, 오후 8시가 지난 시각이 되어서야 영화가 상영된다.

"상영 시작하겠습니다. 휴대폰 전원은 꺼주세요." 국도예술관 관계자들이 담담하게 던진 말이 객석에 울린다. 이어 조명과 스크린이 번갈아 점멸한다. 영사기가 돌아가고 관객들은 화면에 집중한다.

<라스트 씬>은 1월의 마지막 날 국도예술관의 마지막 영화, 마지막 관객을 맞이할 준비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국도영화관의 일상을 그린다. 오전이면 열리는 국도영화관 대문, 이번 주 상영일정표를 게시판에 게시하는 스태프, 텅 빈 넓은 객석에는 두세 명의 관람객, '상영 시작하겠습니다. 휴대폰 전원은 꺼주세요'라는 말과 소등되는 영화관, 영사기에 투영된 이미지, 영사기가 회전을 멈추면 다시 텅 빈 극장 안, 그리고 다시 또 아침이다.

국도예술관 내부 모습. /부산국도예술과나 페이스북

건물 임대 계약이 순탄치 않음을 암시하는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식 이야기와 '독립영화는 백전백패'라며 씁쓸한 자조가 드문드문 이어지는 장면에서 여기저기 짧은 탄식과 한숨 소리가 영화 사운드 일부처럼 들렸다. '폐관'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던 프로그래머의 결의가 영화에 반영이라도 된 듯 영화에서 국도예술관의 대문은 닫히지 않는다.

오후 9시, 영화의 끝을 알리는 엔딩크레딧이 올라온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속속 자리를 떠난다. 관람료는 '감동후불제'. 감동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영화의 장면처럼 자리를 정리하는 스태프들. 그들이 떠나고 나면 텅 빈 영화관의 불이 꺼질 것이다. 국도예술관에서 받은 <예술영화관산책>이라는 소책자에 적힌 '전국에 위치한 19개의 예술영화관을 소개합니다'라는 문구에는 숫자 하나가 더 줄어들 것이다. /실습생 안지산(경상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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