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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서울행

스마트폰에 빠진 '디지털 좀비'들의 행렬
좀비 싫으면 '고향행'…사람 향기 그리워

2018년 02월 14일(수)
윤병렬 창원 삼계중 교사 webmaster@idomin.com

앞에 앉은 사람들, 옆에 앉은 사람들,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옆에 서 있는 사람들, 타는 사람들, 내리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 탄 사람들,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지하철 타러 걸어오는 사람들, 갈아타려고 걸어가는 사람들…. 모두 고개 숙인 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의지할 데라곤 스마트폰뿐인 듯 보인다. 서울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 모습이다. 도무지 표정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만큼 지쳐 보인다. 이런 모습이 내가 보기엔 대부분 '좀비'들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오랜만에 접한 서울 풍경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적어도 90% 이상은 이른바 '디지털 좀비'들이라고 한다. 디지털 좀비는 디지털 기기에 빠져 외부 세계와 절연된 사람들이다.

좀 더 관찰해 본다. 젊은 사람들은 게임에 빠져있거나 멀리 있는 타자와 대화 중이다.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음악 듣거나 대화 나누는 모양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우두커니 앉아 졸고 있다.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한다. 버릇없는 젊은이들 나무라는 말도 들린다. 책을 읽거나 신문 보는 사람들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좀비는 원래 서아프리카 지역의 부두교에서 뱀처럼 생긴 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유적으로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좀비 행렬이 서울을 점령한 것처럼 보인다.

지하철에서 탈출해 거리로 나왔다. 도로 위에는 차량의 꼬리가 물결처럼 넘실댄다.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올랐다. 거리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걸어가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가 틈만 나면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본다. 숨이 막힐 듯해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탑골공원과 종묘가 보인다. 여기엔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파가 몰아쳐 꽤 추운 날씨인데도 다들 밖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노인들 대부분은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다. 살짝 그들 대화를 엿들어 본다. 자세히 들어보니 자신이 살아온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현 세태를 나무란다. 안보 위기, 경제 위기 타령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만난 젊은 사람들과 상황은 좀 다르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좀비들의 행렬이다. '좀비는 기본적으로 떼를 형성하고, 무뇌며, 무한 증식한다.' 좀비 관련 책에서 읽은 글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명석 씨는 '인간성을 잃어버린 채 떼 지어 다니면서 인간을 사냥하는 좀비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하나의 이슈에 몰려드는 키보드 전사와 닮았다'고 했다.

윤병렬.jpg

좀비가 되기 싫으면 영화 <부산행>처럼 도망쳐야 한다. 도망만 칠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의식을 고양해 나가야 한다. 아니면 고향행 기차나 버스에 몸을 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둘러 고향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에 펼쳐지는 산과 들판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제 내일모레가 설 연휴다. 좀비들이 고향행 기차와 버스로 향할 시간이다. 따뜻한 고향집 아랫목이 생각난다. 엄마가 해 주는 집 밥이 그리워진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도란도란 대화 나눌 시간이 다가온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부도 물어봐야겠다. 그래야, 좀비에서 벗어나 인간이 될 터이다. 사람 사는 향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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