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주민들 "날쌔고 근성이 남달랐던 아이" 한목소리

"장하다 정말 잘했다."

남해군 이동면 난음마을, 고모마을 주민은 연방 '고맙다'는 말을 쏟아냈다. 기억 속 '그 꼬마'가 늠름한 청년으로 자라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세계에 위상을 뽐냈다. 설 명절 전 국민에게 선물을 안겼다.

스켈레톤 신 황제 윤성빈이 태어난 난음마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상경하기 전까지 유년기를 보낸, 꼬막이 많이 나 꼬막골이라 불리는 외할머니댁 고모마을. 윤성빈 덕에 주민은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한 명절을 보냈다.

지난 16일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남자 3·4차 주행이 있던 날. 주민은 집에서, 회관에서 간절히 손을 모으고 TV를 바라봤다. 1차 주행 50.28초, 2차 주행 50.02초, 3차 주행 50.18초. 마지막 4차 주행만 무사히 치른다면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썰매 종목 새 역사가 쓰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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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대한민국 윤성빈이 관중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치지 말고 조심히 해라."

멀리서 보낸 주민 응원이 들렸을까. 5.62로 스타트를 끊은 윤성빈은 각 코스를 무사히 통과, 50.02로 트랙레코드를 경신하며 최고 자리에 올랐다. 최종 주행 합계 3분 20초 55. 그가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순간이었다.

주민은 요즘 윤성빈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한다. 마을 곳곳에는 평창올림픽이 시작하기 전 걸어뒀던 '윤성빈 응원' 현수막에 '윤성빈 군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합니다', '하순엽의 외손자 윤성빈 선수 금메달 획득' 등의 현수막이 더해졌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 여기에 주민은 20여 년 전 '꼬마 윤성빈' 기억 하나씩을 꺼낸다.

윤성빈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고모마을에서는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머니와 유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참 말 잘 듣는 손자'라는 외할머니 기억은 윤성빈의 어린 시절을 짐작게 한다. 송효익(62) 난음마을 이장도 '늠름했던 꼬마 윤성빈'을 가장 떠올린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대로 이 마을에서 사셨죠. 손재주가 좋았던 성빈이 아버지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참 밝았던 성빈이가 기억나요. 우리 마을에 98가구 200여 명이 사는데 70% 가까이 노인이에요. 그 옛날 성빈이를 보면서 지내온 분들인데, 다들 쾌활했던 성빈이 모습을 잊지 못하죠. 마을 뒤 '난화방'이라는 깊은 골이 있는데 그 기운을 잘 받은 것 같아 더 뿌듯하고요."

난죽마을 윤성빈 고향집 건너 사는 성영심(55) 씨 기억 속 윤성빈은 '날쌘 아이'다. 현재 윤성빈 고향집은 머무는 이 없지만 영심 씨는 그 시절 유독 빨랐던 윤성빈을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배구 선수 출신이고 어머니는 탁구 선수였던, 윤성빈의 타고난 '운동 DNA'를 일찌감치 알아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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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이동면 난음마을 윤성빈 고향집. 현재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 이창언 기자

영심 씨는 "어릴 적 성빈이를 보면서 크면 육상선수 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달리기를 참 잘했다"며 "고집도 남달랐다"고 말했다.

이웃들의 예상대로 윤성빈의 천재성은 해를 거듭하면서 빛을 발했다. 178㎝의 키인 윤성빈은 점프로 농구 골대를 잡을 정도로 남다른 운동신경을 자랑했다. 스켈레톤 입문 3개월 만인 2012년 9월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고교생 신분으로 대학생 형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후 2016년 2월 스위스에서 열린 2015-2016 7차 월드컵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2017년 11월 캐나다에서 열린 월드컵 2·3차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일궈내며 세계 랭킹 단독 1위에 올랐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윤성빈은 2012년 미국 전지훈련 때 처음으로 트랙을 타고서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힘들다"며 선수생활을 포기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윤성빈 마음을 다 잡아 준 건 어머니 조영희(45) 씨다. 조 씨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스스로 결정해라. 너의 결정을 믿는다"며 윤성빈에게 용기를 심어줬다. 어머니의 무한 신뢰 덕에 윤성빈은 이 악물고 버티며 오늘날의 영광을 얻었다.

조영희 씨의 8촌 오빠이자 고모마을 어촌계장인 김평관(60) 씨도 그 끈기와 가르침을 떠올렸다. 김 계장은 "성빈이 엄마가 7남매인데, 마을에서 화목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성빈이가 어려웠던 옛 시절을 잘 이겨내고 훌륭하게 컸던 이유도 따뜻한 가족·친척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며 "성빈이를 응원하러 간 외할머니가 돌아오고, 성빈이가 고향을 다시 찾을 때 마을 잔치를 열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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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이동면 고모마을 김평관 어촌계장. / 이창언 기자

윤성빈을 향한 고마움과 기억은 그가 졸업한 이동초등학교에도 널리 퍼져있다. 정문에는 응원 현수막이 펼쳐져 있고 전교생 71명은 윤성빈을 응원하는 편지를 일일이 써 보내기도 했다.

이병옥(53) 이동초교 교장은 "윤성빈이 2학년이었을 때 4학년 학생들을 맡고 있었다. 인연이 없어 담임은 하지 못했지만 그 당시 학생들에게 배드민턴을 가르쳤던 주무관 선생님에 따르면 근성이 남다른 아이였다고 한다"며 "윤성빈 덕분에 후배들도 모교 자긍심이 많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윤성빈은 최근 '이번 금메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며 스켈레톤 황제의 창창한 앞날을 예고했다. 무서운 집념과 노력 그리고 고향 남해 사람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새 역사를 써 내려갈 윤성빈 앞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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