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외 6명 지음
공감을 넘어 변화가 필요한 때
작가 7명 페미니즘 단편소설집
현실 속 고민·이야기 담은 흔적

'페미니즘' 소설이다. 30~40대 작가 7명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원고를 청탁받아 쓴 단편소설집이다. 어떤 이는 국내 최초 페미니즘 소설임을 표방한 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책은 여성의 삶을 한가운데 놓은 일곱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 제목은 소설집 맨 첫 편 조남주 작가의 '현남오빠에게' 제목을 그대로 땄다.

소설 속 이야기는 현실과 참 닮았다. 특히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 자신을 재단하는, 여성인데도 여성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행위, 내 안의 여성혐오가 튀어나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 녹아 있다. 이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남편의 말 때문에 부아가 치밀었다. 네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니? 불룩 튀어나온 배 때문에 발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라니. 내 몸을 당신이 왜?' 김이설의 '경년更年' 일부.

'그가 말했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였을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그가 '현명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 일부.

작가들은 저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상과 연상을 달리 해석했다.

'이방인'을 쓴 손보미 작가는 기획을 청탁받았을 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누아르풍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섹스어필을 해서도 안 되고 사랑에 빠져서도 안 되고 다른 누군가(특히 남성)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제한이 사실 우스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설 작가도 작업의 어려움을 전했다. 책으로 읽은 페미니즘과 SNS에서 드러나는 페미니즘, 딸들에게 설명하는 페미니즘과 남편을 설득하는 페미니즘…. 무엇보다도 실제의 내가 실천하는 페미니즘이 그 모든 페미니즘을 따라잡을 수 없어 스스로 자주 곤란해졌다고 고백했다.

도시 개발로 폐허가 된 건물 내부를 촬영하는 여성 주인공으로 규칙을 뒤집고자 한 최정화 작가는 "페미니즘을 알면서 전보다 한결 자유로워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브래지어를 더는 착용하지 않아도 되고…(중략).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남성의 목소리로 세상을 말하는 것에 더 익숙한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해방되고 싶다"고 말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오르고 고개가 끄덕여지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이는 소설 속 주인공에 투영한 스스로 모습 탓에 그렇다. 혹은 주인공 외 인물과 아주 닮아있는 당신이라서 그렇다.

'#미투', '#위드유'가 넘쳐난다. 하지만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신화를 끌어와 표적을 향해 활을 쏘는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은 섬뜩하지만 통쾌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주인공이 남자친구 강현남 씨에게 쓴 이별 편지 속 마지막 한 마디!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로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그런데 조 작가는 작가노트로 고백한다. 소설을 이렇게 끝맺고 느낌표를 찍고 마지막 문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강현남 씨가 스토킹을 하면 어쩌지, 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놓았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든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아니 제대로 내딛고 있다.

283쪽, 다산책방 펴냄,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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