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시민사회, 정부 개헌안 초안에 "생색내기" 지적

지난 13일 청와대에 보고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이하 자문특위)의 정부 개헌안 초안이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연방제 수준 지방분권' 실현에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조만간 발의할 정부 개헌안 최종안에는 지방정부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자문특위와 지방분권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초안에는 전문과 총강 등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을 지향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국가와 지방정부 간 사무를 배분할 때 지방정부가 1차적 권한을 갖고 중앙정부가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보충성의 원칙' 등이 반영됐다.

그러나 자치입법권·재정권 등 지방분권 핵심 쟁점은 현재보다 진일보한 1안과 현행과 비슷한 수준의 2안이 복수로 제시됐으며, 구체적 사항은 법률에서 정하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1·2안 모두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이라는 애초 기대치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자치입법권의 경우 국민 기본권 제한의 법률유보 조항(헌법 제37조 2항)을 자치 법률로까지 완화하는 것이 1안이고, 2안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 규정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개정하는 방향으로 전해진다.

시민사회단체는 이에 "1·2안 모두 법률 우위 원칙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며 "특히 중앙정부가 법률의 많은 사항을 대통령령·총리령·부령에 위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2안은 지금 체계와 달라질 게 없다"고 지적한다.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 상임대표인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문특위 안은 외교, 국방, 금융, 통화 등 국가 존립과 전국적 통일성을 요하는 부분은 중앙정부가 입법권을 갖고, 나머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입법권을 갖도록 한 국회 헌정특위 자문위 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자치재정권도 마찬가지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과세하도록 '자치세'라는 명칭을 헌법에 담는 1안과 지방정부가 조례 형식으로 과세할 수 있도록 법률에 위임하는 2안이 제시됐으나 현재로선 사실상 현상유지인 2안이 유력하다는 평이다. 조세법률주의를 손보지 않는다는 청와대 방침 때문이다.

지역과 시민사회에서는 자문특위가 낡은 수도권 중심주의에 경도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정부는 충분한 지방분권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한 문 대통령이 13일 초안을 보고받으면서는 "지방정부,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을 현실적으로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 교수는 "지방정치인을 신뢰할 수 없어 지방분권은 어렵다는 것은 현재의 기형적 지방권력을 낳은 책임이 중앙권력과 현행 법체계에 있다는 점을 도외시한 주장"이라며 "지방분권과 함께 주민발안제와 주민소환제 등을 실질화해 지방권력 견제 장치를 보완하면 우려를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재율 지방분권전국연대 상임대표는 "지방분권은 중앙집중형 국가체제에 한계가 온 상황에서 국가 운영 패러다임을 혁신하자는 것인데 초안은 지방분권 생색만 낸 모양새"라며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수차례 언급한 문 대통령은 초안을 전면 재검토해 제대로 된 지방분권 개헌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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