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의사전달하면 볼넷 인정
미국·일본 이어 KBO리그 도입
김경문 감독 "실효성은 글쎄"

익숙할 만하면 변하는 것들이 있다. 겨울철 내내 입고 다닌 두꺼운 코트가 정들만하면 봄이 오고, 업무 하나를 겨우 마무리 지을 때쯤이면 새로운 일이 쏟아진다. 익숙할 만하면 어김없이(?) 늘어나는 몸무게는 또 어찌하리.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들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라는 명언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매 경기 무수히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그 변화가 차이를 만든다. 올 시즌 KBO리그는 경기 면에서 큰 변화 하나를 맞이했다. 시간을 단축하고 좀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이끌어내고자 '자동 고의4구'를 도입한 것이다.

고의4구는 투수가 유리한 승부를 위해서 타자를 볼넷으로 걸러 1루로 진루시키는 것이다. 투수가 앞서 던진 3개의 볼과 무관하게 마지막 4번째 볼을 어떻게 던졌느냐에 따라 판정한다. 대개 1구부터 고의적으로 캐처스박스 밖에 서 있는 포수에게 투구한다. 고의4구는 강타자를 알아보는 지표로도 사용된다. 타격감이 좋은 타석 타자는 피하고 대기타석에 있는 타자에게 승부를 거는 작전이라 타자 간 미묘한 감정 차이도 엿볼 수 있다. 타석 타자에게는 허탈함과 자부심을 동시에 주고 대기타석 타자 장갑 끈을 고쳐 매게 하는 게 고의4구다.

하지만 올해 포수가 투수 공을 '가볍게' 받는 모습은 볼 수 없다. KBO는 메이저리그(MLB), 일본프로야구(NPB)를 따라 '자동 고의4구'를 도입했다. 자동 고의4구는 감독이 심판에게 고의 볼넷 의사를 전달하면 투수가 별도로 공을 던지지 않더라도 심판이 고의4구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심판 판정에 따라 '자동 고의4구'라는 문구가 경기장 전광판에 표출되고 타자에게는 1루 진루권이 주어진다.

야구계에서는 자동 고의4구 도입을 둘러싸고 여러 말이 오간다. 찬성하는 쪽은 '스피드 업'과 거스를 수 없는 국제 야구 흐름이라는 점을 든다. 혹시 모를 실수를 방지할 수 있게 된 투수들도 찬성 편이다. 반대쪽에선 '야구 묘미 한 가지를 잃게 됐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갈수록 '변수'를 줄여 단조로운 경기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NC 김경문 감독 역시 "고의 4구 역시 야구 일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아쉽다"며 "실제 고의4구는 한 시즌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번 나오지 않는다. 경기 시간을 단축하려면 다른 방법도 많다"고 말했다.

한편 고의4구는 양날의 검이다. 1사 2·3루에서 1루를 고의4구로 채우고서 다음 타자에게 병살을 유도했을 때 짜릿함은 크지만 싹쓸이 안타가 나온다면 불필요한 점수까지 잃을 수도 있다.

2010년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고의4구 작전 실패 상황이 벌어졌다. 1-1 연장 10회 말 선두 타자 김주찬 안타와 다음 타자 희생번트로 만들어진 1사 2루 상황에서 두산 배터리는 3번 조성환 대신 부상으로 페이스가 떨어진 이대호를 상대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날 경기에서 4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이대호는 보란 듯이 3점 홈런을 작렬, 두산의 바람을 날려버렸다. 규칙은 만들어졌고 변화는 시작됐다. '변화는 있어도 변함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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