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벽, 병원체 감시·위험정보 공유
우리 사회도 이런 연대·안전망 필요

3월도 하순에 접어든 춘분 날 아침, 뜻밖에 눈이 내려 갓 피어난 목련꽃 봉오리가 위기에 처했다. 꽃샘추위의 시새움이 뽀얀 목련꽃잎을 갈변시키는 안타까운 모습을 가끔 보아온 터라 차가운 새벽에 눈까지 온통 뒤집어쓴 목련꽃이 애처로웠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눈이 녹아내리자 목련 꽃잎이 말끔하게 소생되었다. 셔벗처럼 변한 눈덩이의 차가운 냉기를 이겨낸 것이다. 이렇게 시련을 이겨낸 무술년 봄의 목련꽃은 그래서 더 없이 사랑스럽다.

새싹이 움트고 꽃을 피우는 봄은 역시 식물의 계절이다. 식물은 스스로 살고 싶은 터전을 선택하거나 이동을 할 수 없는 불리한 운명이지만 길고 긴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혹독한 자연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나름대로 독특하고 현명한 지혜를 지니고 있다.

동물과는 달리 식물의 모든 세포는 세포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육상 식물의 성장 분화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관이 바로 이 세포벽이다. 세포벽의 기능을 분자적인 수준에서 연구하는 일본 도호쿠대학의 니시타니 가즈히코(西谷 和彦) 교수에 의하면, 식물은 동물에 비해 매우 높이 자라고, 스스로 병원체를 감시·퇴치하기 때문에 수명이 길며, 제한적이지만 운동도 하고, 때로는 적에게 저항까지 한단다. 이 모든 것이 튼튼한 세포벽 때문이란다. 또한, 계절을 감지하는 광 센서와 낮 시간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시계를 가지고 있어서 개화시기까지 조절한다고 하니 더욱 놀랍다.

그럼 왜 식물은 높이 자랄 수 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식물의 몸체를 지탱하고 있는 세포벽은 동물의 뼈보다도 훨씬 더 가볍고 튼튼하기 때문이다. 또, 두 번째 이유는 세포벽으로 이루어진 도관을 사용해서 사이펀의 원리로 물이나 양분을 뿌리에서 잎에까지 올려 보낼 수 있는 교묘한 구조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식물은 120m 높이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단다.

식물은 항체나 면역세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질병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 비밀 역시 세포벽에 있다. 병원체가 세포를 감염시키려면 반드시 이 세포벽을 먼저 뚫어야 한다. 그런데 식물은 세포벽에 병원체를 식별하는 분자센서를 갖추고 병원체를 감시한다. 만일 병원체가 침입하면 이 센서가 작동하여 '병원체 침입' 신호를 세포로 보낸다. 그 신호를 받은 세포는 미리 준비해 둔 유전자를 활동시켜서 병원체를 퇴치하는 약물성분까지 만들어 낸다고 하니 참 신비롭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체의 침입을 막으려고 별도의 신호를 세포에 발신함으로써 모든 세포를 총동원하여 견고한 방어벽을 구축한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근처에 있는 이웃들에게도 이 '병원체'에 주의하도록 비상사태를 발령한다고 하니 식물의 세포벽이 지닌 무궁무진한 역할이 새삼 주목된다.

오늘 아침, 목련꽃이 벌써 지기 시작한다. 예기치 못한 눈까지 맞아가며 화사하게 피어난 꽃잎이 이젠 마당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으니 이 또한 감동이다.

해시태그 미투(#MeToo) 운동이 국내에서 시작된 지 두어 달이 지났다. 그동안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냉가슴만 앓아온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외침이 큰 울림으로 확산하고 있다. 식물의 세계가 스스로 병원체를 감시하고, 방어망을 구축하고, 위험경보를 공유하며, 이웃과 연대하여 병원체를 퇴치함으로써 오랜 세월 건강한 생명을 이어가듯이 우리 인간세계도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총체적으로 연대하여 감시, 공유, 방어, 퇴치, 치유, 공생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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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모든 피해자들이 그 아픔에서 벗어나 밝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희망의 새봄이 되었으면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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