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정정당담]시리고 아픈 땅, 제주

우리 현대사 가장 지독한 상처 지닌 곳
70년 세월 정명 못찾은 '4·3백비' 숙연

2018년 04월 16일(월)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webmaster@idomin.com

남도의 섬 제주. 혹자는 제주를 아름다운 관광지로 기억하겠지만 내겐 그렇지 못하다. 제주사람도 아니면서 그 이름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구석 하나를 들라면 제주가 아닐까 싶다. 주민의 1할이 집단학살로 목숨을 잃은 사례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도 그리 흔치 않다. 그것도 외세 침략자의 말발굽도 아닌 동족 간의 총질로 무고한 목숨이 3만이 넘게 희생됐다.

며칠 전 그 제주를 1박2일로 다녀왔다. 꼽아보니 그간 제주를 다녀온 건 모두 네 차례였다. 순수하게 관광 차원에서 다녀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네 차례 모두 나의 제주행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유독 마음이 더 무거웠다.

처음으로 제주에 간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제주 4·3연구소 지인들의 초대를 받아 갔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은 전부 4·3 답사로 채워졌다. 대정리 알뜨르 비행장, 해안가 지하기지, 그리고 4·3 당시 주민들의 동굴 피난지 등이 지금도 기억난다. 오름 어딘가쯤에 있던 동굴은 입구가 낮고 매우 좁았다. 그래서 일행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7~8미터를 땅바닥에 엎드린 채 기어서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그 동굴 안에는 4·3 당시 희생자들의 유골이 더러 남아 있었다.

이후 제주행은 2011년 강정마을 해군기지건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여성운동가 최성희 씨 석방운동 차, 세 번째는 역시 같은 건으로 구속돼 옥중단식을 하고 있던 영화평론가 양윤모 선배 격려차 갔었다. 제주교도소로 면회도 가고, 집집마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이 내걸린 강정마을에도 갔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반 자연습지대인 강정마을 앞바다의 구럼비 바위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었다.

이번 네 번째 방문은 다시 4·3사건과 관련해서였다. 4·3사건 당시 제주에 투입됐던 한 군인의 행적을 수소문하는 일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증언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설사 그런 사람이 생존해 있다고 해도 그때의 일을 소상하게 기억할지도 의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기록이요, 대화라고 했다. 그런데 관련 기록도 없고 이제는 대화할 사람도 없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모처럼 제주 간 김에 '4·3기념관'을 찾았다.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의 가장 높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행과 함께 1층 전시실로 향했다. 컴컴한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70년 전 4·3 비극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무수한 영혼. 금방이라도 불쑥 뛰쳐나와 내 옷소매를 잡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것만 같았다. 입구에서 10여 미터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들자 환한 빛과 함께 자그마한 광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멀찍이서 보니 광장 한가운데 마치 관(棺) 같은 직사각형 흰 물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앞에 다가가서 팻말을 보니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4·3 백비(白碑)'다. 아직도 역사에서 4·3은 봉기·항쟁·폭동·사건·사태 등으로 불린다. 70년이 지나도록 정명(正名)을 찾지 못해 빈칸으로 남겨뒀다는 얘기다.

정운현.jpg

전시장 곳곳에는 억울한 죽음의 기록들이 넘쳐났다. 무장대와 진압군은 어렵사리 '4·28 평화협상'을 타결 지었다. 그러나 불과 3일 뒤인 5월 1일 우익청년단의 '오라리 방화사건'으로 평화는 깨지고 곧이어 초토화 작전이 감행됐다. 미군이 찍은 '제주도 메이데이'라는 오라리 방화사건 무성영화를 보면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일정 때문에 평화공원 내의 위령탑이나 행방불명자 표석, 비설(모녀상) 등은 미처 둘러보지 못했다. 굳이 현장을 둘러보지 않아도 공원에 스민 고혼들의 외침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공원을 내려오는 길목에 보니 어느새 동백이 지고 있었다. 하나같이 목이 뚝뚝 잘린 채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신문 구독을 하지 않고도
경남도민일보를 응원하는 방법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