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도중 두려움 극복하고, 7년간 써내려간 〈난중일기〉
날마다 평가·반성·계획해, 작가의 고통 승화한 기록물
회의록·시청각기록 생산 등 도민 권리보호 실현 이바지
민간영역 조사·수집 인력…또 다른 '이순신'이 되기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막내아들 면이 그 뒤를 따랐다. 부하들이 있어 마음 놓고 울지 못해 근처 소금창고에서 숨어서 울었다.

어머니 상중, 고기를 먹지 않으려 했지만 임금은 기어이 고기를 하사했다. 그때 이순신의 기록(난중일기)에는 "주상께서 고기를 하사하니 비통하고, 또 비통하다" 했다.

장군은 울었고, 울음을 기록했다. 그 기록을 본 400년 후 사람인 나도 따라 울었다. 이순신 장군의 비통함은 400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 공무원 중 가장 투철한 기록정신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가 남긴 기록은 역사가 되고 이야기와 교훈이 되었다. 그의 세계사적 유례없는 승전의 역사는 놔두고, 나는 그의 '기록'을 이해하려고 한다.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다.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연합뉴스

이순신 장군은 기록의 달인이다. 달인의 선정에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그분에게 '달인'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이유는 그가 겪은 전쟁이라는 상황 때문이다. 상대는 강력했고 장군과 그의 부하들은 두려웠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초라한 군사상황을 적에게 숨기고자 급급했을 것이다. 군사들을 훈련하고, 부족한 식량을 보충해야 했고, 배를 건조하고 적을 염탐하고 승전을 위해 작전 계획을 짜는 등 날마다 하루가 1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도 그는 기록했다. 1592년 임진년 1월 1일부터 1598년 11월 7일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기 전 2539일, 장장 7년간 대기록이다. 개인사는 물론 나라에 대한 애끓는 충정부터 전시의 세세한 상황까지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는 기록이었다.

그분에게 기록은 어떤 행위였을까? 감히 미루어보건대 사적으로는 '생각의 정리' 공적으로는 '업무의 정리, 반성, 교훈, 계획'이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면 과연 기록을 할 여유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적이 밤에 쳐들어올까 봐 갑옷을 벗지도 못하고 잠을 청한 날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날마다 정리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가 겪는 매일의 공무에 대해 적으면서 계획했을 것이다. 모든 승리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기록'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훈민정음과 난중일기: 다시 바라보다 전시'를 앞두고 난중일기 영인본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나는 요즘 이순신 장군을 자주 생각한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바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원을 앞둔 우리나라 최초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인 경남기록원의 하루는 기록연구사로서 자부심, 새로운 도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준비과정은 '처음'이라는 선례 없는 환경에서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그분이 생각나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 우왕좌왕하지 않고 날마다 계획하고 집중하고 업무를 완료했다. 개인사와 겪지 않기를 소망하는 일들의 고통 속에서 헤매면서도 그분은 남은 부하들을 생각하며 기록으로만 고통을 승화했다. 그분에게 감정의 표출이 허락된 곳은 기록하는 행위뿐이었다.

기록하는 것의 중요성은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 말한다. 작가는 작가의 처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농사를 하는 입장에서 다들 그 삶의 모양대로 기록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단 이분들의 공통점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기록은 작성자가 행위에 대한 스스로 평가, 반성, 계획으로 그날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을 주며, 뚜렷한 목표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이 '열심'이라는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안내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록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점은 기록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무절제의 상황을 정리하면서도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견인차의 구실을 한다.

기록관리의 영역 중 '생산의무기록 지정'이라는 것이 있다. 생산되어야 할 기록을 정의하고 지도하는 것, 무심코 혹은 무지에 의해 생산되지 못한 기록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업무이다. 조사, 연구, 검토서의 생산, 시청각기록과 회의록의 생산, 그 외 생산되지 않은 것, 생산되더라도 등록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특히 회의록은 법령으로 정해진 것 외 도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이 회의를 통해 결정되는 경우 그 생산을 의무화하는데, 특히 우리 경남기록원은 이 회의들 중 속기록이나 녹음이 필요한 회의를 지정해 도민의 권리보호 등을 실현한다.

그러나 이상도 법도 현실도 모호한 시점에서 생산되어야 할 기록을 찾는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더욱 철저한 분석과 추진이 필요하며 올해 이 내용을 논의하고자 경남의 기록연구사들이 모여 머리를 맞댈 계획이다. 공공기관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을 분석, 법적으로 생산이 필요한 기록을 정리하고, 정리된 기록물의 보존기간 책정으로 시대가 남겨야 할 기록을 기준표로 작성하는 것이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도민들은 더욱 양질의 도정정보를 획득할 수 있고 공공기관은 기록으로 행정업무의 투명성, 책임성 강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민기록의 현황 분석 및 수집 등으로 공공기록물의 결락을 보완하여 경남의 역사를 보존할 것이다. 경남기록원은 이를 위해 도민아키비스트를 양성할 계획이다. 도민아키비스트는 공공기관의 기록연구사처럼 민간영역의 기록을 조사·수집 및 기증 등의 일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기록이라는 인생의 조력자를 만나게 되고, 역사적으로는 후세에 기록을 남긴 또 다른 이순신 장군이 되는 것이다. 경남기록원은 이를 위해 민간아키비스트 대상 교육과 실습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전남 여수 시민과 관광객들이 지난 2014년 3월 22일 여수 중앙동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성웅 이순신 프로젝트' 행사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필사 행사에 참여하던 모습. /연합뉴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지 476년이 흘렀다. 그동안 운송수단은 말과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고, 먹물을 갈아 한자로 작성했던 공문서가 컴퓨터를 이용해 한글로 작성되고 있다. 그 외 행정 내·외부에서 수많은 내용이 개선되고 혁신되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업무를 보던 장군보다 지금 우리가 더 기록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한다면 그분의 기록정신도 반복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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