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한 눈동자의 꼬마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께 자랑한다. “우리 아빠는 지구를 지켜요~ 미세먼지를 엄~청 줄이고 나쁜 연기도 없애서 공기를 맑게 해 준대요.” 한 번쯤 보았던 TV 광고라 꼬마의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대부분 알 것이다.

TV 광고를 같이 보던 어린 아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경찰서에서 무슨 일 해?”, “엄마도 TV 광고 속 꼬마 아빠처럼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흉악한 범죄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범죄를 예방하거나 흉악범을 검거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피해자보호전담 경찰관이다.

근무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생계를 위해 이른 새벽에 청소 일을 하러 가던 70대 노인을 상대로 한 강도사건부터 귀가하던 여성이 자신을 쳐다본다는 이유로 때려 한 쪽 눈을 실명 위기에 빠뜨린 사건, 10여 년간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린 사건 등등 사건이 발생하면 대부분 관심은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는가에 집중된다. 그러다 보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건의 피해자를 어떻게 도와 피해회복을 할 수 있게 할지는 뒷전이었다. 경찰을 포함한 형사사법기관들이 징벌적 정의(Punitive Justice)에 중점을 두고 범인검거와 처벌에 주력해 오다 보니, 범죄 피해회복 등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이다.

하지만, 2010년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 제정에 이어 2015년 범죄피해자보호 원년을 선포하는 등 형사정책의 관심이 피해자보호와 피해회복을 강조하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로 전환되고 있다. 국가기관과 민간부문에 흩어져 있던 피해자보호에 관한 제도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피해자에게 효과적으로 안내하고 연계하는 허브시스템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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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는 2015년 피해자보호전담 경찰관 제도를 신설했고 다른 기관과 연계해 소송·임대주택·취업·긴급생계비·심리상담 등 다양한 지원으로 범죄피해자들의 피해회복과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돕고 있다.

대부분 범죄 피해자를 최초로 접하게 되는 경찰 단계에서 피해자회복은 사건 직후 피해자의 신체·심리적 고통을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범죄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해 피해자보호전담 경찰관을 찾으시라. 내가 지구는 못 지켜도 범죄 피해자에게 두 번 눈물짓게 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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