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전원회의 계기 한반도 평화 분위기
기차타고 평양 거쳐 몽골만 가도 만족

지난 20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핵·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을 선언하고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로운 노선으로 정했다는 소식이 온갖 해설과 함께 23일 전국 일간지에 도배하다시피 보도됐다. 북한이 핵 동결을 선언했으니 이제 한반도는 서서히 비핵화로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있고 북한이 대미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포석이라는 해설도 보인다. 어찌 됐든 이날 아침 보도된 뉴스를 쭉 읽어본 개인적인 소회로 ‘이제야 정말 뭔가 이루어지려나 보다’ 하는 기대감이 든다.

분단 65년. 지금까지 통일과 평화를 노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열 살도 안 된 초등학교시절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고 통일을 위한 글짓기며 포스터 그리기, 사생대회…. 그리고 학교 사회 교과서와 사회과부도엔 남북을 합친 한반도가 늘 우리나라 지도로 나온 것을 보고 배웠다. 남쪽 어느 지역 정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많이 부족하지만 북쪽의 지명과 특징을 마치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인양 배웠다. 그래서 현실은 남북이 따로인데 머릿속의 대한민국은 늘 하나였는지 모른다.

이제 북의 대전환을 계기로 정말 한반도 평화와 어쩌면 자유로운 교류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싶으니 은근히 용심도 생긴다. 6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다. 그때 연세 93세였으니 지금 99세. 전쟁으로 헤어져 북으로 가신 할아버지가 만약 살아계신다 해도 100세가 넘으니, 사실 미련이라고는 이제 벼룩의 눈꼽만큼도 없긴 하다. 78세의 어머니는 일곱 살에 헤어진 당신 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남이라도 아직 만날 수 있는 이산가족들이 많으니 자유로운 왕래가 이루어진다면 함께 기뻐할 수는 있겠다.

진작에 말이지. 진작에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정권을 계속 잡았더라면 싶다. 그랬다면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나든 못 만나든 편지 하나 달랑 보내고 기약없이 기다리는 그따위 냉가슴 앓을 일 없이 북녘 땅 휘휘 돌아다니며 찾아나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속이라도 후련했을 터. 이제 뭐 솔직히 통일된다고 해도 썩 반갑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통일을 떠들어놓고는 진짜 통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몇몇 정권을 생각하면 속에 화가 치민다. 강력한 제재만이 북을 협상테이블에 끌어앉힐 수 있고 평화통일을 논할 수 있다는 그런 착각은 어떤 단서에 의해 생기는 걸까. 한반도에 사는 수많은 민중에게 그 말이 먹힐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억압과 협박으로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에이, 말해 뭐할까. ‘통일대박’? 그러니 ‘쪽박’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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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이번 선언으로 4·27남북정상회담도 아주 분위기 좋게 흐를 것 같다. 모바일 생중계를 한다니 이 역시 참 격세지감이다. 또 5월이든 6월이든 북미정상회담까지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어서 한국의 야당에서만 별 해괴한 논리로 딴죽만 안 건다면 할머니의 평생소원이 이제야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싶다. 뭐 나야 그다지 통일을 바라진 않지만 대신 마산역에서 기차 타고 서울을 거쳐 평양을 거쳐 신의주를 거쳐 베이징을 거쳐 울란바토르까지 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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