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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낮은 동네는 키 자랑하는 아파트촌으로

[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7) 창원 가음정동
잿빛 슬레이트집 동네 아파트단지로 뒤덮여 지금도 끝없이 확장 중
미로처럼 좁은 길은기업사랑공원으로 변신 사라진 골목과 사람들

2018년 04월 25일(수)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눈앞에 동화책이 펼쳐졌다.

자이언트 트리!

영화 〈아바타〉 속 거대한 나무를 연상시킨다. 창원시 성산구 가음정동 기업사랑공원 안에 있는 어린이 물놀이터다.

이 자리는 10년 전 가음정동 골목 입구였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았다. 기억 속의 10년 전 가음정동을 소환했다.

2006년 6월.

'모녀감자탕' 집 앞에는 택시가 북적북적하고, 족발집 호프집같은 선술집이 늘어섰다. 마을 천지가 '쓰레트' 지붕으로 뒤덮였다.

노인회관에서 만났던 김학근(당시 86세) 어르신.

그는 10년 전에 지금의 나처럼 눈을 감았었다.

"농사 지 묵고 살던 사람들이 공단 터로 땅을 다 안 뺏깄나. 어느 동네는 땅값으로 벼락부자가 됐다 카더마는 여는 무조건 7만8000원 주고 꼼짝없이 다 안 팔았나."

16년전인 2002년 3월 촬영한 당시 가음정본동 모습. 현재 기업사랑공원 자리다. /김구연 기자

"인자 농사도 못 짓고, 여서 못살 줄 알았제. 그런데 공장이 들어서이 사람들이 방 구하로 안 오나. 그 때부터 미나리꽝이고 돼지마구고, 창구고 뚝딱거리서 방을 안 만들었나. 어떤 집에는 60개도 넘게 방을 였다(넣었다)."

건물이 늘고, 벽이 늘고, 그래서 골목도 늘었다.

주로 '쓰레트' 지붕으로 된 주거공간이 한때 800채를 넘겼다. 슈퍼, 식당, 술집 같은 점포는 150개에 이르렀다.

이 골목 저 골목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소환됐다.

'쓰레트'집은 재개발 철거의 끄트머리에서 끈질기게 버티던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다.

'아빠는 멋있는 신사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고물이 되었다/ 고물이 된 신사 힘들어서 녹이 쓴 신사/ 그런 신사를 황홀한 봄 햇빛으로 깨끗이 닦아주고 싶다'(기업사랑공원 안 초등학교 6학년 동시)

결국, 2009년에 모든 건물이 철거됐다.

골목은 사라졌다.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하나 둘 들어섰다.

마을 이름은 이제 '한림풀에버'가 되고, '센텀푸르지오'가 되고, '한화꿈에그린'이 됐다.

공원 끝자락 '가음정마을 옛터' 유허비가 쓸쓸하다.(사진)

▲ 기업사랑공원 끝자락 가음정옛터 유허비. /이일균 기자

"예부터 덤정이라 불렸던 가음정은 동굿, 안골, 서안골로 이루어졌다. 서쪽 낮은 산 아래 못안이라는 동네도 있었다. 당산 양지바른 터에 자리잡은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마을 앞 넓은 들판에는 남천내가 흘렀다. 그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 1970년대 개발되기 시작했고, 2011년에 옛 모습이 사라졌다."

쓸쓸한 회고처럼 옛 가음정마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텃밭의 노인도, 가음정본동 버스정류소의 노인도 모두 이사 온 분들이다.

비운 자리를 채운 건 아파트만은 아니다.

앞쪽에 들어선 게 '기업사랑공원'이고, 수십 개의 창원공단 입주기업 상징물이 들어섰다.

(주)효성중공업PG, (주)영동테크, 한국공작기계(주), (주)연암테크, 해암테크(주), (주)부경, (주)위딘, 피케이밸브(주), LG전자….

그중에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상징물도 있다.

두산, 현대위아, GMB, 첨성대 모양의 합성메데아(주), 신화철강(주), 경남스틸까지.

거대한 아파트단지 사이에 작은 공원이 그나마 숨통을 틔운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고수익투자 마지막 기회 오피스텔보다 싼 아파트, 덴소코리아 사원아파트 가음4정비 예정구역"

"창원 랜드마크 가음8구역 GS건설 자이가 함께 합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아파트가 번식하고 있다.

2006년 6월 24일 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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