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대통령 임기 중 기록물, 영포빌딩 지하 2층서 나와
종이·사진 등 비전자기록, 생산자 '이관' 의지가 관건
등록·관리 등 철저해지면 밀실행정·청탁도 불가능
내달 경남도기록원 문 열어...기록물 기증으로 인식 개선

기록의 탄생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록이 위조되거나 훼손되지 않는 원래 그대로의 것을 의미하는 '진본성', 망실·훼손·손상·변조 등에 의하여 기록이 변경되지 않고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무결성', 기록의 내용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 업무처리나 활동 혹은 사실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신뢰성', 기록의 위치를 찾을 수 있고 검색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는 '이용가능성'이 요구된다.

결국 기록은 순수하고 진실하게 만들어지고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기록을 관리하는 우리가 추구하는 원칙이며 기록관리 업무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탄생한 기록이 기록관(전문관리기관)으로 이관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몇 달 전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왔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인 MB의 임기 중 생산한 기록이 영포빌딩 지하 2층에서 나왔다'라는 내용의 언론 보도다. 사건 후 MB 측은 검찰에 압수물 중 대통령기록물이 포함돼 있으니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나는 그분과 관련된 많은 논란거리는 접어두고 퇴임한 지 5년이 넘은 전직 공무원의 사무실에 재직 시 생산한 원본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유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들은 굳이 MB까지 가지 않아도 아주 오래전 공무원 중 일부는 자신의 업적을 이유로 재직 시 생산한 기록 일부를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풍월로 들은 적은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 방향을 전환하여 대통령의 기록은 '대통령기록관리법'에 의해 규정되어 관리된다고 한다면, 중앙부처, 시·도지사, 시장, 군수 등 기관장 기록은 잘 관리되고 이관되고 있을까라는 물음이 생긴다.

물론 모든 기록이 전자적으로 생산되어 관리된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 될 것이다. 문제는 비전자기록으로 종이나 사진 등으로 생산한 기록의 관리다. 이런 종류의 기록들이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다면 문제는 덜하지만, 등록도 되어 있지 않는다면 기록관에서는 이를 포착할 수 없고 생산자의(이관의) 의지만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기록을 생산한 자가 원치 않는다면 이관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공무원들의 의식상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대다수 공무원은 기록의 등록, 이관, 관리라는 법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틈새를 항상 주지해야 하는 건 또 우리 몫이기도 하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9조, 제21조 등 규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참석하는 회의, 지방자치단체장의 업무관련 활동과 인물사진, 지방자치단체장 등 주요직위자의 업무관련 메모, 일정표, 방문객 명단과 대화록 등은 기록물관리법에 의한 등록, 관리대상이다. 더하여 관련 법 행정 박물 관리대상에 의하면 주요 직위에 있던 사람이 업무수행에 사용하였던 사무집기류도 이관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이 모든 기록물이 잘 이관되어 보존되고 있을까? 내가 아는 선에서만 말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록연구사들 역량, 행정문화 등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다수 기관은 이런 기록물들에 접근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행정의 가장 하부(근간)에서 활동하는 기록관리 업무가 이 법을 실현하고자 힘을 가진다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방문객 명단, 대화록 등은 생산되지도 않지만 생산되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문제에 대해선 기록연구사인 나부터 반성해야 하지만 우리의 행정문화가 이런 기록의 발생을 가져올 만큼 아직 진보되지 않거나 법의 지향점이 현재의 행정환경과 맞지 않다는 사실도 있을 것이다. 방문객 명단과 대화록 작성만 두고 보더라도 이를 기록하기 위한 직원이 항시 배석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또한 그것을 용인해 주는 행정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문화가 조성된다면 밀실행정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될 것이며 청탁의 원천적 불가원칙은 불문율이 될 것이다.

경상남도기록원이 내달 개원을 준비 중이다. 개원에 따르는 여러 가지 절차들을 숨 가쁘게 해 나가면서 준비하는 것 중 하나가 개원식에 기관장기록물을 기증하는 행사다. 대상은 기관장(권한대행 포함)들이 업무 중 사용하였던 사무용품, 방명록, 대화록, 메모, 명패, (시구)유니폼, (업무와 관련한)개인 애장품 등등 종류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기증식의 취지는 기관장 기록물이 법적 이관대상임을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 기관장이 개인의 업무관련 기록을 기증하고 이관절차를 스스로 시행해봄으로써 자신의 업무가 후세에 남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문자로만 존재한 기록물관리법의 해당 문구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기관장기록물의 경우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한 사무집기류 등의 행정박물이 대부분이다. 사진은 행정박물수장고를 개방하고 있는 기록관이다. /경기도

이와 더불어 민간기록물을 기증받는 행사를 준비 중이다. 1896년부터 현재까지 경남의 문화, 경제, 복지, 문화 등과 관련된 기록을 기증받는 행사다. 현재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민간기록관과 대상자를 만나고 있다.

이 글을 보는 도민 중, 도민이 아니더라도 경남의 역사와 관련된 기록을 소장하고 있다면 경상남도기록원(055-268-4932)으로 연락해주길 바란다. 기증자는 경상남도기록원 전시실에 그 이름을 부착해 기증자의 명예와 자긍심을 보존하고 기증기록물이 온전히 후대에 남길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를 할 것이다.

선조 때 학자 신흠이 지은 〈상촌휘언〉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관이 사초를 불태우고 도망갔기 때문에 선조가 즉위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 25년간 사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선조실록의 내용 중 임진왜란 전의 내용이 소략할 수밖에 없었던 방증이기도 하다.

사관들이 한 행동의 동기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우선 기록이 없다는 것, 역사가 없다는 것은 '과거를 배움으로 교훈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임진왜란 전 조정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왜 그 전쟁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그와 같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교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징비록이나 다른 역사서들로 이와 같은 교훈과 반성의 간극을 메우고 있긴 하지만 기준 기록의 부재는 아쉽기만 하다.

기록을 남기는 행위는 생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전문기관으로 이관해 적합한 관리를 하는 것, 후손에게 남길 기록을 선별하는 것, 당대에도 그것이 활용되도록 하는 것, 어느 것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이 글을 쓰는 나와 기록인 몫이고 이 글을 보는 독자 몫이기도 하다. 역사의 책임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기자 전가희(기록연구사)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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