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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타고, 양 몰고 "오늘은 나도 유목민"

[아들과 함께 오토바이 타고 유라시아 횡단] (5) 몽골 초원서 만난 친구 헤지스렁
우연히 만난 10대 남매 초대로 3일간 꿈같았던 유목생활 체험
말 한마리 작별 선물, 마음만 받아

2018년 05월 01일(화)
시민기자 최정환 webmaster@idomin.com

우리에겐 목적지가 따로 없다. 아침에 일어나 달릴 만큼 달리고 해질 때쯤 숙소를 찾는다. 중요한 것은 아들과 함께하기에 비교적 안전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 그곳이 비싼 호텔이 될 때도 있고 저렴한 게스트 하우스나 홈스테이가 될 때도 있다. 때론 현지인 집에 초대되기도 하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해 남부 루트를 선택해서 출발했다. 2차도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졌는데 상태가 좋은 우리나라 포장도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군데군데 아스팔트가 깨어지고 길이 패어 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멀리 보이는 앞쪽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그 사이로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다. 더군다나 오후를 넘어 슬슬 해가 질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가기에도 제자리에 서 있기에도 망설여져 난감해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침 조그마한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직 20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소년과 소녀가 한 오토바이에 타고 우리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손을 들어 앞쪽 먹구름을 가리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웃으며 그들은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도로를 벗어나 길도 없는 광활한 몽골 초원으로 안내를 했다.

몽골에서 만난 소녀 헤지스렁 가족의 배려로 3일간 초원을 누비며 말을 타는 등 꿈같았던 유목생활을 했다.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고 그보다 매우 큰 하늘이 넓게 펼쳐졌다. 그들을 따라가는 동안에도 저 멀리 앞쪽엔 계속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다. 길도 없는 초원을 20분쯤 달려가니 몽골 전통 천막집인 게르 한 채가 나타났다.

아이들 부모가 게르 안에서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반겼다. 아이들은 남매지간인데 남자 아이가 17살이었고 여자 아이가 15살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헤지스렁이었다. 몽골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다행히 헤지스렁이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조금 사용할 줄 알았기에 기초적인 의사소통은 되어 부모의 말을 통역해줬다.

우리는 한국에서 출발해 유럽까지 갈 거라고 이야기하니 대단하다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몽골의 학교 방학기간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데 겨울 방학은 보름 정도로 짧고 여름방학이 길어서 4개월가량 된다고 했다.

이곳 기온이 겨울엔 한낮에도 영하 20~30도까지 내려가는 얼어붙는 땅이지만 5월부터 날이 풀리기 시작해 7월 초인 지금 초원에 풀들이 많이 자라서 가축을 돌볼 수가 있고 9월이 되면 다시 추워지는 지역이다.

이곳 학교의 여름방학이 긴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집안일을 도울 수 있는 여름철이 적당해서가 아닌가 싶다.

헤지스렁 가족 게르에 마을 주민이 함께 모였다.

게르 안으로 들어가 차와 간식을 대접받았다. 게르 안에는 가장자리로 나무침대 4개와 한쪽 옆엔 부엌시설이 되어 있다. 단출한 살림이다. 욕심 없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들은 유목 생활을 하며 양과 말, 소를 돌보며 지낸다.

아이들도 부모를 도와 가축을 돌본다. 양들이 한곳에서 오랫동안 있으면 먹을 풀들이 없기에 수시로 자리를 이동해서 양들이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게 목동들의 일인데 아빠를 도와 자녀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게르 안에서 같이 자자고 하는데 자리가 협소해 아들과 내가 잘 만한 곳이 없었다. 그들에게 부담 주는 게 싫기도 해서 게르 옆에다 텐트를 쳤다. 울란바토르에서 산 술 한 병과 통조림 2개를 선물로 건넸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밥을 해먹으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다 함께 먹자고 게르 안으로 다시 우리를 부른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손짓 발짓 대화를 하고 그러다 서로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웃으며 그렇게 밤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헤지스렁의 아빠가 말 한 마리를 가져오더니 말 등에 안장을 앉혔다. 그런 후 아들 지훈이에게 타고 놀라고 했다. 헤지스렁 아빠가 지훈이에게 말 조종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말을 타고 지훈이 또래의 동네 꼬맹이들이 나타났다.

이미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다는 게 근처에서 목축업을 하는 유목민들에게 소문이 났다 보다. 지훈이에게 친구들이 여러 명 생겼다. 지훈이는 그들과 함께 온종일 말을 타고 놀았다.

해가 지고 저녁 식사시간에 우리가 궁금했던지 멀리 떨어진 다른 게르의 어른이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했다. 간밤에 계획에도 없는 파티가 열렸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음식을 내어주고 친절히 대해준 이들의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다.

말을 탄 아들 지훈이와 몽골서 만난 동네 친구.

다음날 아침 출발하려던 계획을 하루 더 연장했다.

지훈이가 헤지스렁을 따라 일을 돕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원 사이로 흐르는 개울에 가서 요리할 때 사용할 식수를 길어오고, 땅바닥에 떨어진 양털을 모으는 일을 했다. 어린 송아지를 돌보고 양을 다른 곳으로 모는 일도 했다. 그러면서 이들과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 꿈같았던 3일간의 유목생활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다시 길을 나서고자 짐을 정리하고 텐트를 철수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려고 하는데 헤지스렁의 아빠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 말은 지훈이가 타고 몽골 초원을 누볐던 말이었다. 헤지스렁의 아빠는 떠나려는 우리 오토바이 뒤에다 말고삐를 묶었다. 당황하게도 지훈이가 타고 논 말을 선물로 주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내가 말을 묶어서는 계속 오토바이 여행을 할 수 없다고 하였더니 가다가 어디서라도 팔아서 아들 지훈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라는 것이었다. 난데없이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는 중에 2년 후 다시 올 때 그때 가져갈 테니 잘 보관 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몽골에 지훈이 말 한 마리가 생겼다.

다시 길을 나선다. 바앙홍고르라는 남쪽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비교적 큰 도시였기에 호텔도 있고 식료품점도 있었다. 다만, 물이 귀한 지역이라 호텔에서도 물 공급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먼저 도착한 외국인 바이커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날 내린 벼락으로 도시 전체에 전기마저 나가버렸다. 물과 전기가 없는 호텔에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건 세수하고 양치질을 할 수 있는 물 한 바가지였다.

난감해하고 있을 때 아기를 안은 부부가 탄 승용차 한 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들과 내가 길가에 털썩 앉아 있는 게 안 돼 보였나 보다. 서툰 몸짓 언어로 우리에게 물이 필요하다고 하니 자기들 집으로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을 따라 바앙홍고르 시내 언덕을 올라가는데 도시 안에도 모래밭 비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수도인 울란바토르 말고는 도시라고는 하지만 개발이 한참 안 된 곳이 많은 것 같았다. 그들은 도시 안에서 게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당 문을 열고 한쪽 옆에 주차를 했다.

울타리 안 두 채의 게르 중 한 채는 이들 부부 그리고 한 채는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셨다. 이들과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시민기자 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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